주방 호스와 조지 마이클 (R. I.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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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축 근무 1일차였던 오늘의 과제는 주방 호스 교체였다. 모르는 사이에 물이 조금씩 새고 있었는데, 하필 무쇠팬을 비롯한 각종 팬을 넣어 두는 공간이어서 그것들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물을 야금야금 받아 대참사는 면하는 대신 다시 길을 들여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한참 큰 물통을 받아놓고 증상을 살폈는데 호스만 갈면 되는 상황이었다.

걸어서 3km쯤 떨어진 마트를 왕복하며 조지 마이클의 ‘Faith’ 앨범을 각각 여러 버전으로 들었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로 트위터에서 주워 듣고는 처음엔 DJ 김기덕이 죽었다는 이야기로 착각했다. 그도 한편으로 나의 초중학교 시절 취미-음악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지라 부랴부랴 찾아보니 아니었고, 진짜 죽은 이는 조지 마이클이었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올해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조지 마이클의 부음이야 말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다. 부모님이 안 계시던 집에서 온갖 가요부터 팝송까지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줄줄이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AFKN 라디오 등으로 채널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음악이라는 걸 찾아 듣기 시작한 계기가 조지 마이클이었고 ‘Faith’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 그 시대를 휩쓸고 지나간 음악가가 한둘이겠느냐만, 나에게 언제나 최고는 조지 마이클이었다.

1987년이었나, 기억이 맞다면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처음 오르간 전주-왬 시절의 ‘Freedom’ 멜로디-를 듣고, 정신이 나갔다면 좀 그렇지만 테이프를 사서 앨범 전체를 듣고 또 들었다. 당시는 가요 앨범에 ‘시장에 가면’ 같은 건전가요가 맥락에 상관 없이 실려야 하는 데다가, 외국 음반은 라이센스로 찍어내면서 금지곡이 생기면 아예 건너 뛰거나 다른 앨범의 노래를 가져다가 짜깁기처럼 실어 내는 시대였다. 이 앨범도 멀쩡하지 않아서, 녹색을 썼던 지구 레코드의 라이센스에는 솔로로 처음 발매한 싱글인  ‘A Different Corner’가 실려 있었다.

결국 1988년에 모종의 일로 미국에 가셨던 어머니께 부탁해 원본 LP까지 구했는데 이미 턴테이블 시대가 끝나서 거의 듣지 못했다. 사진의 CD는 언제 어디에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일요일이면 할일 없이 쇼핑몰을 헤매고 다니던 시절 망해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4.99달러쯤 주고 집어왔으리라 짐작만 한다.

그저 노래만 들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져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방학 동안 학원에도 다녔다. 어머니의 거래처였던 피아노 대리점에서 기타를 골랐는데, 좀 특색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싸구려 픽업이 달린 쇠줄 어쿠스틱을 골랐다가 장마를 한 번 보내고 나서 몸통과 목 사이의 접합부가 떨어져서 기타는 폐물이 되고 말았다. 수리를 맡기기는 했지만 그냥 본드로 다시 붙이는 수준이었으므로, 싸구려 기타는 쇠줄의 장력을 버티지 못하고 재활에 실패했다.

당시 수원 구 시가지 한복판의 건물 꼭대기에 있는 학원에 다녔는데, 나는 입으로 기타를 치는 학생이어서 꾀어 데려간 친구 둘보다도 늘지 않아 결국 선생님의 눈 밖에도 나고 기타도 흐지부지 치다 말았다. 지금은 그렇겠느냐만, 당시의 나는 인내심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굉장히 산만한 십대였다. 찾아보니 그 학원은 아직도 같은 건물에 그대로 있다. 그럼 한 40년 쯤 된 것이다. 이후 나는 본조비와 메탈리카를 거치며 전기 기타를 사서 독학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한 곡을 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살고 있다.

앨범 두 장을 들을 정도로 먼 길을 걸어서 호스를 사왔는데 안타깝게도 맞지 않았다. 한 가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접합부의 크기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고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랴부랴 집 근처의 철물점을 수배해서 맞는 호스를 다시 사와 끼우고, 몇 달 더 살게 될지도 모르면서 물이 시원찮게 나오면 헤드도 사온 김에 갈았다.

‘Faith’ 앨범에서 버릴 곡이 있겠느냐만 30년 가까이 지난 다음 다시 들어보니 One More Try가 여느 때보다 더 좋게 들린다. 아까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가스펠 편곡 특히 좋다.미국에 있을 때 한 번쯤 공연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10년 쯤 전에 동네에 왔는데, 친구들 몇몇이 보러 간다고 그래서 ‘으아니 조지 마이클을 보러가고 언젯적 이름이냐’라고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밖에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죽음을 새삼 두렵게 곱씹겠다고? 아니다. 그가 너무 빨리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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