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사람,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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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여름이었다. 학교 통신 동호회 사람들과 강촌으로 간 엠티였다. 자발적으로 가기는 했지만 애초에 엠티 따위 좋아해본 적 없는 인간이었고, 삼삼오오 모인 어떤 그룹에도 관심이 없다 보니 나는 금세, 역시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어 있었다. 적적하구만. 소주나 마셔볼까? 근처 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짱구인지 새우깡인지를 한 봉지 사서 평상 위에 앉았다. 무리지어 노는 사람들을 관조하며 소주를 마셨는데… 생각 만큼 잘 들어가지 않았다. 소주 한 병을 못 마시는 주량이냐면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 마셔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결국 반 병쯤 마시고 포기했고, 생각보다 술 한 병 혼자 마시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교훈과 함께 다음 날 아침 기차로 돌아왔다.

2005년, 아니면 2006년이었을 거다. 이것저것, 막말로 지랄발광을 하다 못해 혼자 먹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혼자서라도 재미를, 그것도 아주 열심히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재미에서 음식이 빠질 수 없으니 누가 있건 없건 찾아서 먹어야만 했다. 곧 토요일 오전에 영화 보는 패턴을 만들었다. 먹고 영화를 보거나, 보고 음식을 먹었다. 프렌치 토스트 같은 브런치부터 베트남 쌀국수까지 혼자 부지런히 먹었다. 혼자 먹는 습관을 혼자 만드는 습관에 접붙이니 꽤 빨리 자라기 시작했다. 곧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레스토랑에서도 혼자 열심히 먹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0년이 더 흘러 2016년이다. 때로 혼밥이 화제 취급을 받는다. 뜯어보면 ‘혼자’와 ‘밥’ 양쪽 모두가 예민하다. 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있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혼자가 삶의 많은 양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모든 ‘혼자’의 자발적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타의에 의해 혼자되는 상황, 즉 고립이나 따돌림만이 혼자일 거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고 싶어하는, 혼자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국면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국면 가운데 아마 거의 대부분은 자발적인 혼자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 못하는 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일 것이다.

거기에 밥이 맞물린다. 어떻게 영화를 혼자 봐요? 2005년 이후 열심히 혼자 보고 먹으러 다니던 시절, 동갑내기 한국인 회사 동료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때로 어떤 ‘왜(why)?’라는 질문의 답은 ‘왜 안 돼(why not)?’일 수 밖에 없다. 저 상황도 그랬다.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영화가 사람보다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사람 없이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냥 나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찾고 가능성을 타진하고 합의를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때로 어떤 여건에서는 거의 또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럴리 없다. 무엇보다, 어차피 영화 또한 사람이 만든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보다 식탁에 마주 앉을 사람의 존재 유무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흔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 또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하필 밥을 혼자 먹나?’라는 질문은 이미 만드는 사람의 존재의 배제를 전제로 삼는다. 어차피 사람이 만든 음식이니 그런 음식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존재한다. 그런 욕망이 사람을 혼자 식탁으로 이끈다. ‘밥을 어떻게 혼자 먹냐?’라는 물음 또는 선언이 정녕 ‘밥의 소중함’을 내포하고 있다면, 바로 그 소중함이 어떤 사람들을 혼자 식탁으로 이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음식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동물은 혼자 밥을 먹지 않는다. 동물의 대부분이 집단 생활을 하고 음식, 정확하게는 먹이의 수급을 욕망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다. 그리고 많은 동물이 무리지어 다닌다. 결국 무리지어 다니다가 먹이가 생기면 그제서야 먹는다. 혼자 먹을 수 있나? 그런 동물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맹금류 같은 최상위 포식자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맛은, 적어도 인간 만큼은 모른 채로 먹는다. 혼자 먹는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일 수 없다.

진짜 동물 같은 인간은 따로 있다. 섬세함을 모르는 인간이다. 단지 혼자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로 격하되는 건 아니다. 의미를 폄하하는 등, 자신마저 속여가며 혼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혼자이고 싶은 욕구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계층과 세대의 갈등 속에서 하루 세 끼 먹는 밥만이라도 오롯이 혼자 즐기고 싶은 마음을 죽어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동물이다. ‘혼밥’하는 이가 아닌, 그런 욕구를 헤아릴 만한 섬세함도 없어 동물을 들먹이는 당신이 바로 동물이다.

7 Comments

  • RainyDays says:

    잘 읽었습니다. 소위 혼밥에 대한 참 단순하고 몽매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보며 갑갑했었어요.

  • ㅇㅅㅇ says:

    개 짖는 소리에 대한 글 치고 너무 친절하네요. 친절맨이신듯

  • Capri says:

    팔라펠 아님 치킨볼 ? 음식 사진이 예뻐요. 글 내용에 많이 공감합니다 ..

  • haf says:

    사실 여기서 저는 여전히 살아있는 ‘조중동의 힘’을 봅니다. 그냥 동네 중늙은이같은 분(“일본 사람들은 고기맛 몰라요”라고 어이없이 일갈하시는 것을 볼 때 그분의 미식 취향과 수준은 저같은 장삼이사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일본식 시모후리 니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무런 특색이 없는 한우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을 앉혀다가 조중동의 힘으로 전국민이 아는 스타를 만들어 내는 걸 보면, 전문의의 상담치료가 필요한 일렉트라 컴플렉스 환자가 일국의 국가원수가 되는, 그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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