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면-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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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께서 또 한 건 하신 모양이다. ‘한국인에선 국물을 다 먹고, 일본에서는 면 위주로 먹는다’고…

과연 그럴까. 지극히 상식-굉장히 오염된 단어지만-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면과 스프 모두 공장제에 기대어 라멘을 만들어 팔 수 있다. 하지만 그 단계를 벗어나 정체성을 추구하는 가게라면 둘 가운데 어느 쪽을 직접 만들 가능성이 높을까. 후자다. 면을 국물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두 가지 요소가 자가 제면을 어렵게 만든다. 첫 번째는 공간이다. 가루와 물, 즉 반죽을 다루려면 수평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일본의 환경에서 어느 수준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반면 스프를 위한 끓이기는 주로 수직적이다. 화로 위에 높은 솥이나 냄비를 올릴 수 있으니 부피만큼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물론 원한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좁은 공간 안에서 제면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라멘 면의 핵심 재료인 밀가루의 핵심 성분은 글루텐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숙성 등의 과정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어 질감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공장에서 온습도를 포함한 환경도 훨씬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설비를 통한 압착 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면 공장의 영상을 보면 사이사이 숙성을 포함시킨 다단계 압착을 통해 면을 뽑는다. 소규모 설비의 자가제면과 접근 방식과 규모가 다르다. 또한 나름 이름 있는 가게들이 의지하는 면 공장이다. 공장면이 자가제면보다 꼭 열악하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공장면에 기댄다고 면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생님께서는 혹 메밀로 만든 소바를 생각해서 ‘일본에서는 면 위주로 먹는다’고 말씀하셨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했다 보기 어렵다. 메밀은 밀의 일족도 곡식도 아니고 글루텐도 없다. 반죽을 숙성시킨다고 해도 밀면 만큼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라멘보다 소바의 자가 제면 비율이 높다면 재료의 근본적인 차이가 인식의 차이 또한 낳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일본에서는 라멘의 국물을 다 먹지 않는가? 소위 ‘완식’의 의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으므로 일반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멘집의 후기에 간증처럼 올라오는 빈 그릇의 사진이 일단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물을 연구하기 위해 병에 남은 국물을 몰래 담아 가지고 나가지 않는 한, 다들 먹어 비웠기 때문에 사진을 올렸을 것이다. 또한 국물을 뜯어보면, 대부분 끝까지 먹게 또는 먹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방법과 재료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지방을 바탕으로 감칠맛이 두드러지고, 맛의 여러 켜가 각각 또렷하게 살아 있다. 그 가운데는 늘 말하는 신맛이나 짠맛 등 가셔내고 잘라주는 맛들이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해 물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대개 면을 다 먹고 나면 국물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온도도 적절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파나 고기 등 각종 고명이 면과 조화 및 대조를 이루는 질감도 선사한다. 한마디로 잘 만든 국물은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다 먹게금 만든다. 그럴 때 나트륨의 과다 섭취 같은 문제를 과연 생각할까? 대개 그렇지 않다.

일본-라멘이 우수한 음식임을 강변하려는 수작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다. 나는 다만 저 모든 요소가 계획과 설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두 측면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일단 간단한 첫 번째는 온도다. 백만 번쯤 말해왔다. 한식의 뚝배기는 너무 뜨겁다. 온도 자체도 문제지만, 그 뜨거움이 가리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극단적인 조건이 (의도적인) 단점을 가린다. 그런 뜨거움은 어떤 식문화권에서도 미덕 취급 받아서는 안된다. 맛 이전에 순수하게 생리학적으로만 따져봐도 그렇다. 또한 끓이는 온도도 굳이 아주 높을 필요 없다. 온도가 높으면 대류가 일어나고, 대류는 물리적인 유화를 일으킨다. 국물이 탁해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켜다. 국물이 아우르는 역할을 분명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우름과 뭉뚱그림은 다르다. 모든 재료를 아무런 처리 없이 한꺼번에 넣고 끓이면 뭉뚱그려지지, 아울러지지 않는다. 재료를 쓰기는 썼으니 맛을 느낄 수는 있지만 희미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재료를 최선의 맛을 낼 수 있는 전처리 방법과 국물에 더하는 시기 등을 기준으로 재분류해야 한다.

작년 초였나, 매체의 의뢰로 선생님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몇 번 쓴 적 있는데 솔직히 재미 없다. 지식과 정보로 촘촘하게 짜낸 시각(perspective)도 아니고 구조나 일관성도 없다. 굳이 지적이나 반론이 필요하지 않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지적과 비판이 아깝다. 그저 “조롱”과 “차별”만이 수준에 맞는, 따라서 공정한 대응이다. 진지하지 않은, 진지할 수 없는 것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건 때로 진지함의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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