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의 술 주문 문제-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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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직전 ‘레스토랑의 술 주문 문제‘에 대한 글이 페이스북에서 또 구른 모양이다. 갑자기 오른 트래픽과 출처를 보니 확실하다. 덧글도 또 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의 문해력에 이제 희망을 걸지 않는다. 어차피 읽고 싶은 대로 읽고 반응하고 싶은 대로 반응한다. 글이 생각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치는 매개체가 아니고, 바뀌지 않을 생각이나 신념을 표출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만 한다. 글이 담고 있는 시각이나 주장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한 번 더 정리해본다. 이 주제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글을 많이 썼으므로, 사실 더 쓸 필요를 못 느낀다. 어차피 이 글에 동의하는 사람은 예전 글들을 통해 동의를 마쳤을 것이며, 아닌 사람들은 글을 백만 개 더 쓴다고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글쓰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설득할 의향이 없다. 설득은 나의 과제가 아니다.

0.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맞다. 특정 레스토랑, 또는 파인 다이닝 씬에서 탄산수 한 병, 와인 한 잔 더 팔린다고 해서 나에게 무엇인가 떨어지지 않는다. 웃기는 얘긴데 들먹이는 사람이 꼭 나온다. 내가 무슨 주류 문화 홍보대사인가. 나는 많은 레스토랑에게 미움을 사는 존재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달라져야 한다. 한국 레스토랑씬이 맛없는 음식을 일상처럼 내는 것과는 별개다. 결국 TV 출연하는 준 연예인 셰프들이 나서고 나서야 좀 더 조명받았지만 ‘노 쇼’의 악습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 씬이 못한다고 예약을 불이행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문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개선을 촉구해왔다.

1. 그래서 말인데 레스토랑 운영자나 셰프 같은 실무자가 공식이든 아니든 ‘술 안 시켜도 괜찮다’라는 입장을 밝히는 건 맞지 않다. 설사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밝혀서는 안된다. 많은 이들의 얽혀 있고, 요리 업계의 급여는 내가 소매 걷고 나서 알아보지 않더라도 좋은 수준이 아니다. 둘은 원칙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내가 아는 창구, 특히 내 블로그에서 그런 주장을 접하고 싶지 않다.

2. ‘난 술을 안 마시는데 어쩌라는 말이냐’에 대한 답은 이미 전 글에서 상술한 바 있다. 알코올이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미치는 이들마저 레스토랑의 이익을 위해 술을 시키라고 말한 적 없다. 대체 논의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2-1. ‘차라리 요리 하나 더 시키는 게 낫지 않냐’라는 주장도 있는데 아니다. 맛 외에, 술과 음료 주문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역시 전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2-2. ‘음식값을 현실적으로 책정하라’는데 어떤 게 ‘현실’인가? ‘한국/우리 정서’ 운운하는 분들 많은데 뭔지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주장을 펼치려면 일단 내부에서 정리부터 해야 한다. 세계 다른 곳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이 한국에서만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영향을 미치는 ‘한국/우리 정서는’ 과연 긍정적인 요인인가?

3. 음식에 술/음료 또는 물을 곁들이는 문제가 취향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 나오는데 역시 아니다. 물, 그것도 공짜로 주는 물은 서양식 식사에서 택할 수 있는 최후 최악의 수단이다. ‘물과 함께하는 식사는 죄수의 것’이라는 표현도 있다. 하나의 음식을 놓고 맥주, 사케, 와인을 곁들일 것인지, 각 술의 영역 안에서 어떤 다른 선택을 취할 것인지 논해야 취향의 영역이다. 모든 다른 것을 취향으로 아우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4. 태도/마음가짐/글쓰기 등등 언급 및 지적 또한 무의미하다. 전부 할 말 없으면 나오는 것들.

5. 근본적으로 이건 지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결국 각자가 설정하는 레스토랑 경험 영역의 문제다. 설명은 하지 않겠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물이 사실 별로 맛이 없다. 그것도 취향 차이 아니냐, 서양 물은 미네랄 너무 많지 않느냐 등등 이야기 많이 할 수 있을텐데, 원칙적으로 레스토랑에서 돈 안 내고 마실 수 있는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와야 한다. 정수기 물이 맛있느냐면 그렇지도 않고.

2 Comments

  • Bridget Riley says:

    두 편의 글과 덧글까지 모두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서양은 와인을 마셔 온 역사가 오래돼 손님 스스로도 와인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레스토랑들이 셰프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들여 소믈리에를 뽑는 경우가 많으니
    와인을 주문했을 때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한국은 손님도, 레스토랑도,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 할 가능성이 높아
    음식과 궁합도 안 맞는데다 바가지까지 쓰지는 않을까 염려해서 주문 안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즉, 미덥지 않은 상황이라서 주문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치즈 낼 때 다들 습관처럼 포도나 사과를 곁들여 내는데
    사실 생과일과 궁합이 잘 맞는 치즈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히려 치즈 맛을 해치는 경우가 많죠.
    마찬가지로, 음식과 정말 잘 맞는 와인이 아니라면 안 마시느니만 못할 텐데
    술 주문 안 하는 손님을 탓하기 전에 저는
    한국에 귀신같이 궁합 잘 맞춰 와인 내 주는 레스토랑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는 거지요.

    다 떠나서,
    bluexmas 님 레스토랑 리뷰들 읽어 보면 음식이 와인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는. ㅋ
    음식 값 치르기도 아까울 텐데 와인까정? 뭐 이런 생각. ㅋ

  • Bridget Riley says:

    참.
    한국 물맛 좋은 편입니다. 적어도 유럽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유럽에서 비싼 돈 주고 사 마시는 유리병 물보다
    염소 기운 날려 보낸 한국 수돗물 맛이 더 깔끔하고 청량해요.
    같은 차를 우려도 확실히 한국이 더 맛있게 나오고요.
    물에 관해서는 한국은 복 받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아껴 써야겠지요.
    (유럽인들 물 아껴가며 설거지 하는 거 보면 으악.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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