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콘슈머 리포트’와 딸기잼 평가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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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자리

매체의 음식 관련 기사에 관심을 거의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뿌리부터 잘못 되었다고 느끼는 게 너무나도 많다 보니 울화통이 터지기 때문이다. 사실 ‘뿌리부터’ 잘못된 게 아니라 뿌리가 없다. 그러니 평가도 제대로 될 리 없는 것이다. 그런 걸 쫓아다니며 지적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내 에너지 낭비다.

그런 울화통의 나날 가운데 우연히 잼을 평가한 국민일보 기사(컨슈머 리포트)를 보았다. 바탕을 생각하면 애초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까운 신문이지만(특히 성 소수자 관련 기사), 하필 딸기잼을 평가한대서 들여다 보았다.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감 없이 뿌리가 없는 평가였다. 잼이 한국 고유의 음식은 아닐지언정, 먹어온지는 오래 됐다. 내가 초등, 아니 국민학교를 다닐 때도 조악할 지언정 잼이라는 게 있었으니 적어도 30년 이상 존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기준을 세워서 평가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리 없다.

심지어 이런 식의 비교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럴싸하게 붙이려는 제목이 따왔듯 ‘컨슈머 리포트’라는 이름의 독립 매체가 존재하며,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도 있다. $30~50의 연회비로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비교 평가 리포트를 한두 편만 읽어 봐도 기준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설사 나의 경험과 평가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준을 정확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딱히 중요하지 않다. 기준 속에 담겨 있는 기본 정체성만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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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그래서 잼은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사를 반박하는 건 귀찮고 소모적이니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기준을 제시해보자. 한국식으로 글을 쓰자면 잼의 역사나 용어(젤리, 프리저브, 마멀레이드의 차이 등)을 구구절절이 늘어 놓아야 제맛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다. 사실 잼은 아주 간단한 음식이다. 과일의 보존이 기본 목적이고, 소금과 마찬가지로 다량의 설탕이 수분을 들어내 미생물 번식을 억제한다. 수분을 들어내고 끓이는 과정에서 과일의 펙틴이 우러나와 특유의, 찰랑거리는 고체 질감을 만든다. 따라서 잼은 기본적으로 과일과 설탕 두 가지 요소만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여전히 최선이 될 수 있다. 설탕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50%에서 좌우로 5%다. 국민일보의 리포트에서 복음자리 잼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건, 그렇게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유일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황설탕, 흑설탕 모두 영양 차원에서 아무런 의미 없으며 과일의 맛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백설탕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잼의 기본 정체성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바뀌었다. 첫 번째는 냉장고다. 온도 조절로 미생물 발생을 억제할 수 있으니 설탕의 중요성이 다소 줄어들었다. 당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맞물려, 요즘의 잼은 저당도 제품이 선호되는 추세다. 그래서 설탕 대신 과일즙을 첨가한 제품이 많다. 주로 포도나 배즙을 쓴다.  두 번째는 펙틴이다. 사과껍질 등에서 별도로 추출할 수 있으니, 덕분에 질감 또한 인위적인 통제가 훨씬 쉬워졌다. 그 결과 펙틴을 자체적으로 많이 지니지 않은 과일로도 적당한 농도의 잼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으며, 오래 끓일 필요도 없어졌다. 경우에 따라 아예 끓이지 않고 만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아예 먹기도 전에, 이러한 조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잼의 1차 평가가 가능하다.

1. 재료의 가짓수가 적을 수록 좋다: 과일과 설탕이 1, 2순위의 재료여야만 한다. 비율은 각각 50%에서 +/- 5%다.

2. 설탕 외의 감미료는 과일주스 정도나 의미가 있지만, 맛을 위한 선택은 아니다. 잼 특유의 농축된 과일+단맛이 떨어진다. 대체 당류가 들어간 잼은 한결 더 좋지 않다. 특유의 뭉근한 단맛이 전체의 균형을 깬다. 국민일보의 평가에서 올리고당 잼이 2위로 선정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호텔 주방 종사가가 저런 평가를 내렸다면 음식이나 맛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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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원

3. 잼의 맥락에서 펙틴을 굳이 ‘인공 첨가물’이라 규정할 이유가 없다. 원래 과일에서 추출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프락토 올리고당 같은 대체 당류가 인위적인 첨가물에 훨씬 더 가깝다. 언제나 적으로 삼기 쉬운 대상(easy target)이지만 첨가물은 유해하지 않으며, 쓴 맥락을 살펴야 한다. 잼에 펙틴을 쓸 수 있다면 질감의 향상을 위해 젤라틴(동물성 재료)이나 로커스트콩 검 같은 첨가물을 쓸 필요가 없다. 과일 함량이 높아 잼 아닌 콩포트라는데, 라벨을 읽으면 딱히 먹고 싶지 않다.

4. 마지막으로 산이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쓰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최대 다섯 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잼만 찾아도 어렵지 않게 먹을만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과일과 설탕의 양대 기본 재료에 과일즙, 펙틴, 산(레몬즙, 구연산 등)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산 가운데 얼마나 많은 제품이 저 정도 재료로만 만들었을까? 웬만한 마트라면 수입산과 더불어 구색을 갖춰 놓았을 테니, 비교도 재미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기에서 평가한 제품 가운데 복음자리 빼놓고는 먹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요소를 감안해 평가 요소를 나열해보자.

1. 재료: 과일과 설탕을 비롯, 꼭 필요한 재료만 썼는가?

2. 맛: 과일맛과 단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가?

3. 색/향: 선명한가?

4. 질감: 나이프로 퍼 올렸을때 흩어지거나 뭉개지지 않지만 빵에 균일한 켜를 이루며 발라지는가?

이 정도만 평가할 수 있어도 멀쩡한 잼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원래 한국 음식이 아닌 것은 레퍼런스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존재 자체를 모르니까 엉뚱한 기준을 만들고 족보 없는 음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족
1. 복음자리 잼 또한 요즘은 먹지 않는데, 재료 때문이다. 한국의 딸기는 맛의 균형이 깨졌다. 스테비아 류의 뭉근한 인공감미료맛이 앞에서 강하게 치고 빠르게 사라진 다음 바로 밍밍하게 급락한다. 신맛도 없고 향도 이상하다. 다른 과일의 단맛도 딱히 다를 게 없다. 그나마 설탕만 쓰면 괜찮다. 올리고당 같은 감미료로 만들면 끔찍한 맛이 난다.

2. 이런 재료와 맞물려 ‘집에서 끓인 잼의 신선한 맛’은 환상이다. 과일도 끓이면 끓일 수록 신선함이 가신다. 또한 과일의 상태에 따라 펙틴 함유량이 다를 수 있으니 농도도 맞추기 쉽지 않다. 겪어도 보았다. 어린 시절 오디나 사과, 딸기잼을 집에서 엄청나게 끓였다. 오디는 뻑뻑했고 사과는 묽었다. 전혀 맛있지 않았다. 대량생산 잼은 진공상태에서 낮은 온도로 끓여 색과 맛의 손실을 막는다. 저 기사에 등장하는 호텔 주방 종사자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신뢰할 수 없는데, 잼을 직접 만들어 쓴다는 게 결정타다. 먹을만한 대량생산 제품이 다수 수입되어 있는 가운데 굳이 맛없는, 또한 생식 위주 과일을 직접 끓여 잼을 만드는 이유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직접 만든다고 무조건 좋지 않다. 호텔 주방이 요리사 집단의 분업으로 돌아간다면, 그 요소 또한 다양한 생산자와 협업 및 분업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다. 직접 만든다고 뭐든지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4 Comments

  • ichbinyul says:

    시판 잼은 진공 상태에서 끓인다는게 어떤 의미인가요? 재료가 들어있는 pot을 진공상태로 유지한 상태에서 가열을 하는건가요?

  • Elise says:

    올리시는 글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당신이 글을 쓰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저는 음식에 조예가 없어 이런 기준이 있구나, 어쩐지 이 집 음식은 맛이 없더라니 이래서였구나, 하고 매번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르겠습니다:)

  • Renaine says:

    구버와 스머커로 자라났지만 요즘은 포숑을 제일 자주 먹는 것 같아요.
    잼/스프레드 계 같은 거 만들어서 la chambre aux confitures 모든 맛 테이스팅 해보고 싶은데요…

  • Matthias says:

    혹시 그럼 세인트다르푸르(?)는 어땋게생각하십니까?
    마트 지나가다 보니 무설탕 천연재료로 만든 잼이라던데 뭔소린가 싶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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