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빵과 허술한 전통

IMG_20164월 초, 벚꽃이 한창이던 시기에 하프 마라톤 참가를 위해 경주에 갔다. 시내에서 밀면 먹고 어슬렁 거리다가 눈에 띄어, 온 김에 또 먹어보겠다고 공장(및 매장)에서 황남빵을 샀다가 충격 먹었다. 이미 먹어보지 않았느냐고? 맞다. 예전 글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대로라면 아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럼 왜 충격을 받았나. 구워낸 빵을 채 식기도 전에 상자에 담아서 내주었기 때문이다. 뜨끈뜨끈한 빵이 싸구려 종이 상자의 석유 냄새를 한층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 입맛이 떨어지는 건 물론, 그대로 식어가면서 서로 달라붙는다. 그제서야 나는, 택배로 받은 황남빵이 왜 그런 몰골이었는지 아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건물을 번듯하게 지어 놓고, 개방적인 주방에서 직원들이 빵을 만든다. 그걸 또한 현대적인 데크 오븐에 넣어 굽는다. 얼핏 보면 제대로 현대화 되었다고 믿게 된다. 나도 적지 않은 인파 사이에서 번호표를 받아들고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빵을 받아드니 잠에서 확 깨어나듯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빵을 식히지도 않고 포장해 팔 수 있는가.

IMG_2006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나는 이것이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이해했다. 빵을 식히려면 굽기 위해 대기시키는 만큼의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잔뜩 기다릴테고, 전통 혹은 관광지나 유랑의 분위기에 젖어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아마 따뜻하다며 더 좋아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공장에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작업대는 굉장히 여유 있게 놓였고, 일하는 사람들도 크게 제약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궁극적으로는 빵의 완성도를 희생시켜 얻는 전시효과로 보였다. 간신히 구했지만 허름한 보문단지의 숙소에 들고 들어와, 달라 붙은 걸 떼어 몇 개쯤 집어 먹다가 치웠다.

IMG_2004이런 게 전통이라고 팔린다. 비단 정서적인 공감대 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 단체를 통한 일종의 인증된 지위마저 누린다. 그렇다고 정말 오래 묵은 것도 아니다. 업체의 소개에 의하면 1939년에 출범했다니 100년에서 한참 빠질 뿐만 아니라, 시기상 무엇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정말 독창적이라 규정하기에도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음식이 의도적인 관리 소홀로 인해 가격-개당 800원, 최소 포장 단위 20개-이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완성도로 팔린다. 달리 말해 유서 깊지도 않은데 그런 지위를 누리며 허술한 채로 판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전부 연결되어 있다. 특정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대해 나쁘게 리뷰하면 파들파들 떨며 인신공격하는 인간들이 나오는데, 나는 한편으로 그런 음식이 총체적으로 돈에 맞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믿기조차 어렵다. 소위 전통이랍시고 지자체에서 밀어주고, 모두가 줄을 서서 사먹으며 심지어 시내 전체가 유사 업장으로 뒤덮이는 800원짜리 빵조차 뜨거운 걸 싸구려 상자에 밀어 넣어 그냥 파는 현실이다. 한국의 문화가 기본적으로 이 수준이라면 외부자의 시각으로 들여다 보지 않는 한 문제를 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80년 만든 800원짜리 빵도 이 모양이라면 10년도 안 한 18만원짜리 한 끼 식사가 제대로 될 수가 있을까? 가격을 따지기 이전에,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고민이 없다. 그런데 모두가 감정적인 측면만 내세워 식문화의 문제점 제기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감정 100%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 것도 아닌데.

 

6 Comments

  • RainyDays says:

    사실 식히지도 않고 포장하는 행위가… 어쩌면 진정으로 무식해서가 아닐까, 라는 의심도 해봤습니다.

  • 번사이드 says:

    오오, 한국 수준… 참담하네요;;
    이게 정말..한국음식 문화에 생각이 별로 깃들어있지 않은가봅니다. 짧게 빙수 특집 중인데(5~6군데 정도 다룹니다) 단맛과 신맛 조화.조절에 별 신경쓰지 않아 딱히 좋은 데가 안보이더군요. 체인점인 로이즈빙수의 망고목화빙수가 그나마 제일 나았습니다[…] 그마저도 대만풍 망고빙수를 따라해서 큰 단점이 드러나지 않은 것일 수 있죠~

  • 단단 says:

    휴…
    첫 사진 보니 만듦새도 형편없네요.
    팥소가 그냥 빵 밖에 막 비어져 나와 있네…
    왜들 이리 프로 정신이 없는 건지, 내 조국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국의 문화가 기본적으로 이 수준이라면 외부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한 문제를 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이 말씀에 저는 절대 공감하는데, 문제점을 이야기해 주면 또 외쿡 물 좀 먹고 왔다고 잘난 척 한다고 합니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더 잘 보이는데 어쩝니까.

  • ... says:

    오히려 따뜻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천지인데요 뭘.

  • Real_Blue says:

    위에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이유는 두가지 중 하나일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무식하거나

    손님이 원하니까… 그걸 그냥 해 버리는거죠. 두번째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특유의 뜨거운 음식 선호 사상은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적용 되는것 같습니다.

    한달전부터 구움과자 장사를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갓 오븐에서 나온 제품을 보면 저걸 달라고

    합니다. 마들렌 처럼 몇 일을 두고 먹을 수 있는 과자도, 하루에 세번을 굽는 다고 말씀드려도

    방금 나온것이 좋다며, 뜨거운 채로 상자에 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양심으로

    뚜껑을 연채로 쇼핑백에 담으면, 다시 닫아 버립니다.

    어쩔 수 없는것 같습니다.

  • Henry says:

    폴 xx 커피숍에서도 레인지에 잠깐 돌린 빵을 비닐에 밀봉해 주곤해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문제는, 그 점에 대해 말을 했는데도,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갈 때마다 비닐에 밀봉해
    줬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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