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合)의 한과, 재료와 전통 한식의 문법-개념적 테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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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케 박람회에 들른 길에, 오랜만에 현대 무역센터점에도 들렀다. ‘합’의 떡/한과를 안 먹은지가 참으로 오래라 생각났던 것. ‘고물’이라는 브랜드로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서 찹쌀떡과 주악, 인절미 등 제품 전부를 사들고 왔다. 그래봐야 여섯 가지 밖에 안 됐다.

사진 자체에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어쨌든 접시에 올려 놓고 나니 엄청나게 예쁘지는 않다. 일반적인 서양 디저트와 견주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갈등은 시작된다. 돈은 공평하다. 같은 돈을 내고 사는 물건이라면 비교하는 기준도 같아야 한다. 10,000원을 내고 살 수 있는 케이크와 같은 돈을 내고 사는 떡은 비교 당할 수 밖에 없다. 10,000원짜리 떡이 같은 가격의 케이크보다 아름답지 않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가? ‘전통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일단 전통이 너무 소수인데다가, 사실 진짜 문제는 외관 즉 형태와 색깔을 그런 유형으로만 가능케 제약-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하는 음식의 문법 그 자체일 것이다. 물론 한식-한과 옹호론자라면 ‘한식의 매력은 은은함/은근함’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대척점의 개념, 즉 화려함이 존재해 선택할 수 있을때 그런 주장은 의미가 있다. 없는 가운데 바로 그 부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드는 은근함은 은근함이 아닐 수 있다.

IMG_1821아, 약간 삼천포로 빠졌다. 진짜 소재는 그게 아니다. 바로 그 문법과 재료 사이의 관계다. 떡의 속을 채우는 재료의 대부분이 국산이 아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무화과는 이란산, 호두는 칠레산이다. 그런 가운데 팥이 국산이라 나름 신기하다고 여겼다. 이왕 다른 재료가 이란이나 칠레산이라면, 팥도 수입산을 못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가 작용했을까? 그래도 팥은 국산을 써야 하므로? 말린 무화과와 호두 모두 국산이 존재한다. 못 쓸 이유가 없다. 다만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수입산에 비해 대략 다섯 배 수준 가격이라고 알고 있다. 국산 팥도 쌀 리 없다. 수입팥의 약 두 배다. 게다가 캐나다산도 존재하지만 대개 중국산이다. 실무자의 수학은 내 영역 밖의 일이지만, ‘국산 대 수입 재료 사이의 가격차+이란/칠레와 중국 사이의 온도차’가 작용했다고 짐작한다.

그렇다면 이걸 정확하게 전통 음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식의 문법에 외국산 재료를 차용한 음식 말이다. 나의 의견부터 밝히자면, 그렇다고 믿는다. 비단 문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와 별개로, 애초에 국산 재료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상품이므로 단가를 맞추는 것도 문제지만, 품질이 그만큼의 가치를 주지 못할 때 사업자 입장에서는 쓸 이유가 없어진다. 문법으로 치자면 가장 엄격하다고 할 수 있는 평양냉면의 예를 들어보자. 어디에선 몽고산 메밀을 쓴다고 한다. 국산이 별로 없는데다가 좋지도 않고, 몽고의 환경 덕분에 재료의 질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나는 팥의 사정도 그렇다고 알고 있다. 국산의 품질이 가격에 비해 좋지 않다는 것. 밀가루는 어떤가.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글루텐 함유량 등등을 떠나 통밀 같은 경우는 겨까지 완전히 고운 가루로 갈아 놓았다. 이미 산패했는지 반죽하면 냄새가 다르다. 빵이 맛있을리 없다.

한편 ‘재료가 제일’이라는 강박적 재료주의에 고통 받는 식문화인지라, 마케팅의 일환으로 열악한 품질을 무릅쓰고도 국산을 고집하겠다면 할 말은 없다. 그건 종교적 신념에 가까우므로 타파도 되지 않는다. 효능주의와 얽히면 아예 답도 없어진다. 동네에도 ‘몸에 더 좋은 국산 팥’을 쓴다는 빵집이 있다. 국산 팥이 건강에 더 좋다는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또한 단팥빵은 건강 식품도 아니다. 한편,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기술로 재배 및 사육해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들여온다면 수입산 재료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근거는 없어진다. 오직 음모론만이 존재할 것이다. 나쁘고 좋은 수입 재료가 존재하는 것이지, 수입 재료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덮어 놓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재료의 원산지와 품질 사이의 관계도 그렇지만, 음식의 현대화라는 차원에서도 재료의 경계선에 대해 재교할 필요가 있다. 팥이나 호두가 그렇듯, 전통적인 맛을 내는 재료조차도 국산을 쓰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면 그 경계선을 굳이 고수하려 드는 의도 자체부터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정말 지켜야할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쥐고 놓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서 발전시킬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일가? 이미 일본을 통해 서양은, 특히 제과 부문에서 동양의 재료를 적극 받아 들인지 오래다. 녹차나 유자 같은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들지 않았나. 그 반대 방향으로, 특히 한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그나마 바로 떠오르는 것이 떡 케이크다. 성공적인 것일까. 서양의 문법을 차용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떡은 밀도가 높은 탄수화물이다. 켜와 모양을 차용한다고 정확하게 개선이 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개악일 수도 있다. 케이크에서 켜 사이에는 반드시 매개체가 존재한다. 다른 질감과 맛을 제공하는 한편 전체를 아우르는 매개체인데, 떡 케이크에서는 대부분 그마저도 그냥 떡이다.

그래서 제주도산 레몬 같은 재료를 놓고 생각한다. 대체 언제가 기준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한식의 재료는 아니었다. 하지만 감귤류로서는 표준적인 맛을 지닌 재료로 어디에나 쓰인다. 한과의 문법에도 들어갈 틈새가 존재한다. 게다가 국내에서 생산한다. 심지어 레몬청은 어디에서나 쓰인다. 그런데 한과의 재료로 쓰이는 건 보기 어렵다. 콜라비로 깍두기 같은 걸 담가 먹는 현실이라면 레몬떡 같은 것도 등장해야 할 것 같은데, 본 기억이 없다.

한편 재료를 적용하는 방법도 좀 더 다듬어야 한다. 다시 합의 한과로 돌아와보자. 그나마 현대적인 시도를 하는 곳이지만, 재료의 물리적 결합에 치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칠레산 호두와 이란산 무화과는 거의 통째로 떡 속에 들어간다. 무화과는 그래도 괜찮지만 물기를 머금은 통호두는 설컹거린다. 팥을 삶아 으깨어 쓴다면, 호두는 왜 통으로 넣어야만 할까. ‘호두 얼음과자(머랭)’도 마찬가지. 가볍고 바삭한 과자라면 호두가 통으로 한 가운데 바닥에 있는 것보다는 잘게 나눠, 아니면 아예 갈아 반죽에 섞는 쪽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재료를 각인시키기 위한 의도일 수 있지만 확실히 맛의 효율은 떨어진다(한편 베어 물 때 표면의 가루 때문에 재채기가 나는 건 설빙의 콩가루 빙수와 똑같다. 말하자면 UX의 설계 오류). 한편 주악은 질기고 설탕물이 그냥 배어나와 먹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먹었는데,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결론. 무엇이 한식인가. 물어보면 대개 ‘이게 한식이다’ 보다는 ‘이게 한식이 아니다’로 대답한다. 한편에서는 치킨, 짜장면, 부대찌개 같은 음식은 한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점이 언제든,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문법은 정착했더라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내 일은 아니고 관심도 없지만, 누군가 족보 및 계통학 연구를 해서 현존하는 한식의 족보를 죽 따져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300년이면 300년, 500년이면 500년 등 일정 세월을 기준으로 잡아서 그 이후에 등장한 음식은 전부 한식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뭐가 남을지 궁금하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신토불이파가 존재한다. 국산 재료가 아니면 뭘 만들어도 한식이 아니다. 불고기라도 호주산 쇠고기를 썼다면 그것은 한식이 아니다. 고기를 따지기 이전에 일단 간장과 참기름의 원산지 및 정통성부터 따져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식당에서 무심코 사먹을 된장찌개의 두부나 된장은 과연 국산일까. 따지기 시작하면 식당의 전기의 원천이 수력인지, 해외 기술이나 수입 원료의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인지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보수적이면서 인지부조화적인 한식의 정체성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 운신의 폭을 좁혀 상존하는 맛없음의 체계를 굳히고 있는 건 아닐까.

*사족: 그나마 거의 없다시피 한 현대적 한과 전문점에서 고구마를 구워 파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Comment

  • 단단 says: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신토불이에 효능주의(저는 못마땅해서 효능 ‘드립’이라고 씁니다.)가 합쳐지면 정말 답이 없지요.
    식량 자급률도 떨어지는 나라가 외국 식재료를 무슨 독극물처럼 생각한다는 게 웃기는 거죠.
    중국이 우리한테 억지로 쓰레기 농산물을 떠넘기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질 낮은 것들만 골라 들여와 놓고서는 남 탓을 합니다. (아, 잊을 수 없는 간마늘 사건.)
    지적하신 대로 우리 농산물들의 맛과 품질이 다 뛰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값은 드랍게 비싸지만요.

    이 신토불이 + 효능 드립에 덧붙여 저는 요즘 또 하나 거슬리는 게 있는데 뭔고 하니
    ‘수제’ 문구.
    가게마다 온통 수제 드립.
    당연히 가게에서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것에도 수제 드립을 해댑니다.
    돈가스 집들이 ‘수제 돈가스’ 하는 것도 웃기죠.

    게다가 유해요소 잘 관리하면서 잘 만든 공장제가 맛과 품질, 위생, 만듦새 모두 훨씬 나을 수도 있는데
    수제면 못 만든 것도, 촌스러운 것도, 안일한 것도, 다 용서가 되는 분위기인 듯합니다.

    참,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저 한과와 떡, 맛은 어땠는지요?
    저는 ‘못생김’에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는데요,
    미국식 드롭 쿠키들은 삐뚤빼뚤 울퉁불퉁 못생겼어도 격하게 사랑합니다. ㅎㅎ
    쵸코칩이나 견과류 숭숭 박히고 크랙 잔뜩 간 진한 맛의 (가운데 gooey한) 못난이 쿠키가
    고운 색소 옷 입은 매끈한 마카롱보다 더 맛있어 보일 때 많아요. 실제로 더 맛있을 때도 많고요.
    결국 맛만 뛰어나다면 못생긴 것도 매력으로 봐 줄 수 있다는 소린데,
    못난데다 맛도 그저 그렇다면 아무리 우리 전통 과자라 해도 사 먹어 줄 이유가 없지요.

    저는 늘 ‘전통 과자’ 하면
    동그란 틴에 켜켜이 담긴 데이니쉬 버터 쿠키,
    빨간 타탄의 워커스 쇼트브레드,
    럭셔리하기 짝이 없는 금박 종이 포장의 니더레거 마지판을 떠올리며
    작금의 우리 현실을 아쉬워하곤 합니다.
    좋은 예들이 눈 앞에 수두룩 놓였는데도 왜 못 따라하고 있는지 안타까워요.
    일본도, 대만도, 자기네 과자들 선물하기 좋게 참 잘도 포장해 놓고
    만들기도 야무지게 잘 만들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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