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니에르 인터뷰(0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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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20일 했던 피에르 가니에르의 인터뷰. 올리브 매거진에 실렸으니 온라인에서 찾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알지만 앞으로 올릴 글 몇 점과 얽히는 구석이 있어 ‘아카이빙’을 겸해 올린다.

22분 30초. 그가 홀연히 주방에 등장한다. 그리고는 폭발적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프랑스의 연작 셰프-요리 다큐멘터리 <요리의 발명 (L’Invention De La Cuisine)>, 피에르 가니에르 편 이야기다. 약 5분 동안 그는 열 사람 몫의 요리를 한다.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겸연쩍은 듯 웃으며 ‘이제 그렇게 요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세월의 흔적을 크게 못 느꼈는데, 1998년에 찍은 것이라고. 요리 50년차, ‘내 나름의 역사를 이뤘기 때문에 느긋함을 찾으려 한다’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열정적이었고 또 진지했다. 그렇게 다시 서울을 찾은 셰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 레스토랑을 서울에 오픈한 이후 매해 찾아오고 있는데, 이 봄에 특히 관심을 가진 재료나 레스토랑 방문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요리가 있는가?

답: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3-4년 동안 한국의 해산물에 관심을 가져왔다. 또한 인삼이나 오미자, 막걸리처럼 전형적인 한국 재료 또한 우리 요리에 접목시키고 있다. 2014년 11월에 후앙 로카, 르네 레드제피와 함께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에서 스페셜 메뉴를 선보인 적도 있다.

 

문: 셰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들의 주방으로 이끈 결정적인 음식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인 음식이 존재당신의 기억 속에도 그러한 음식이 있는가?

답: 셰프로서 나의 목표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좋은 음식을 내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떤 게 좋은 음식일까? 감각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나에게는 좋은 음식이다. 식탁의 차림새, 테이블보의 감촉 까지 전달할 수 있는 예술 작품과 같은 음식을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다. 또한 재료 스스로가 선사하는 창조의 실마리를 담아내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따라서 그러한 기억보다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여행 등이 음식에 나의 음식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 밀폐된 공간에서 남들 놀때 일을 해야 하므로, 음식 평론가로서 요리사는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음식과 셰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셀레브리티 셰프’의 개념이 등장하고 텔레비전에서 요리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문화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요리사의 유명세는 새삼스러운 오늘날의 현상이 아니다. 1960년대, 폴 보퀴즈가 출발점이었다. 지휘자, 심지어 왕의 역할을 하는 셰프의 개념이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유명세를 타는 셰프들도 요리를 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체의 노출을 좀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나는 나름의 역사를 이뤘므로 느긋함을 찾으려 하지만,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셰프들의 말과 콘셉트, 담론이 넘쳐난다. 그들 덕분에 요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요리를 하나의 쇼로 여기는 경향이 자리잡았다. 방송에는 관심을 기울일지언정 레스토랑에는 오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선보이는 요리 가운데는 이미 몇십 년 전에 정립된 것도 있는데, 그런 걸 보여주고 요리 천재라도 탄생한 것인양 보여주기도 한다. 표절이 분명한 것들도 있다.

 

문: ‘내 나름의 역사를 이뤘다’는 표현을 했는데, 현대 서양 요리사에서 당신의 자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전환점을 에르베 디스와의 만남이라고 본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답: ‘역사를 썼다’라고 말했는데, 그건 요리를 한 세월이 50년에 이르렀다는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50년 전체를 굽어본다면 에르베 디스와의 만남이 전환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 그럼 50년 세월 동안 요리 세계가 변화 또는 진화를 해왔을 텐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답: 50년 동안 요리를 해온 것도,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도 믿기가 어렵다. 스스로 놀랄 지경이다. 내가 변화를 주도해왔노라고 감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의 요리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고 자부한다. 그동안 힘든 시기가 분명 있었지만, 사업적인 측면을 비롯해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타협하지 않고도 요리 세계의 핵심 가치를 지켜올 수 있었다.

 

문: 프랑스 요리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조차도 오트 퀴진이나 누벨 퀴진 등, 중추적 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들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본인이 지켜야 할
프랑스 요리의 핵심 또는 정수가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답: 프랑스 요리는 예술이라기보다 수공업의 형태로 발전했고, 그 가운데 앙토넹 카렘이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같은 셰프들이 4, 5대 엄마 소스 등의 요리 문법을 정립했다. 거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프랑스 요리의 정수는 소스다. 일본의 다시, 한국의 김치와 같은 위상이다. 따라서 내가 지켜야 할 프랑스 요리의 가치 또한 소스다. 그런 가운데 내가 지닌 힘은, 전통이나 지역이나 갇혀 있지 않고 세계로 열려 있는 정신이다.

 

문: ‘세계로 열려 있는 정신’에 대해 말했는데, 바로 그 세계적인 셰프의 존재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셰프는 한 사람인데 여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이다. 당신도 파리, 홍콩, 서울 등 세계 각지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그런 현실에서 어떻게 피에르 가니에르 요리의 동질성이나 일관성을 유지하는가?

답: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35년 동안 한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요리를 했다. 그래서 첫 사업 확장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혼을 잃지 않을까, 자문도 해보았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타진할 때는 나이도 중요한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울 등 세계로 열려 있지 않으면 금방 늙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한다. 물론 이렇게 서울을 찾는 데는 홍보의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쨌든, 인생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현명하게 요리 세계를 구축하려면 건강, 좋은 가치 등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 판단하자면 하나의 레스토랑에만 한정시키는 것보다,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여러 레스토랑을 세계 곳곳에 두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문: 당신 요리책(Reinventing French Cuisine)의 뒷날개에, 주방 견습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의 견습은 1966년 8월 23일 시작됐다. 프랑스 북부에서 휴가중이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태평한 나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당장 와. 견습생이 필요하다.’ 내가 일했으면 좋겠다며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던 자리가 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을 거쳐 요리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은 요리학교에 들어가는 추세다. 그 둘 사이에 문화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는가? 또한 그렇게 요리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답: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나는 도제 시스템을 거쳤는데, 일찍 시작해서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한 탓에, 다른 세계로 열린 문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나는 운 좋게도 요리가 잘 맞아 50년을 해 왔지만, 그렇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학교에선 요리를 배우는 한편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주방에서 필요한 만큼의 경험을 쌓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본인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조언을 하자면, 남학생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요리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고, 또 아주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