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멘야산다이메-굉장히 우직한 맛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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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민 없는 선택이 고난을 안긴다면 삶은 한층 더 불행해진다. 나는 그저 가장 가까운 곳을 찍었을 뿐이었는데, 줄에 합류해 기다려야만 했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지난 일요일은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 발렌타인 데이였다. 누군가는 삼대의 노하우를 사랑의 저녁 메뉴로 택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노하우가 흘러가는 방향이 관건이다. 0점을 기준으로 수직 아래 방향, 즉 맛없음으로 흘러간다.

IMG_1099돈코츠와 해산물을 반씩 섞어 ‘더블 스프’라는 블랙 라면(8,000원)은 전자에 간의 기준을 맞췄는지 빈약한 가운데 짰고, 두 재료의 비린내 또는 맛을 공평하게 흡수했다. 그 속에 잠긴 면은 동네 중국집에서 만날 수 있는 소위 ‘고무줄 면’을 가늘게 뽑은 것 같았다. 대개 ‘고무줄’ 같다고 말하지만 이런 면은 질기다기 보다 딱딱하다. 표면이 매끈해 소스든 국물이든 썩 잘 묻어나지 않으며 덜 삶더라도 꼬들거리지 않는다. 한편 전체적으로 존재감 없는 고명 가운데는 그나마 차슈가 가장 훌륭했다. 모든 요소 가운데 가장 음식 같았다.

IMG_1098배도 고프고 호기심도 일어 주문한 사이드 메뉴는 단돈 3,000원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감칠맛 없는 국물에 풀린 계란이 비린 미니 부타동, 착착 접어 여민 등주름의 딱딱함을 한결 더 강조해줄 만큼 빈약하고 뭉친 속의 교자는 나름 귀엽게 맛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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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의 가격을 감안하면 비싸다 싶은 맥주(아사히 생, 8,000원)까지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이 우직하고 심지 굳은 맛없음은 오히려 감동적이다. 잘 할 수 없는 여건과 솜씨를 가지고 필사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비참한 맛없음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맛이 없고, 따라서 감정이입까지 한다. 먹으면 슬퍼진다. 왕왕 잠도 설친다. 이날 저녁의 맛없음은 결과 급이 다르다. 잘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긴장하지도 않는다. 맛없음을 목표로 잡아 놓고 그리로 꾸준히 나아간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일궈낸다.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은 안하지만,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맛이 없으려면 적어도 이렇게 철저히 맛없어야 한다. 그래야 고뇌도 후회도 남지 않는다. 나는 이런 맛없음이 좋다. 혹시 이날 줄 서서 기다린 사람들 모두, 그 맛없음에 끌려 찾은 것이었을까.

2 Comments

  • goldmund says:

    왜 홍대부근 라멘집 하면 아직도 저집은 꼭 들어갈까요. 혹시 전에도 저기서 라멘을 드셔보신 적 있었는지.. 그때는 지금보다 맛있었는지 궁금하네요.

  • 대건 says:

    여기가 2010년 말에 오픈했을 때만해도 그냥저냥 라멘집이었는데, MBC 찾아라 맛있는TV 나오고 나서 줄서는 맛집이 되었지요. 그 이후로는 뭐 체인점도 많이 생기고… 사람이 몰리면 관성(?)같은게 생겨서 그런지 속칭 병크를 터뜨리지 않으면 계속 잘나가게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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