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속의 숨 죽은 채소

IMG_0957국만 놓고 보면 청진옥은 그래도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음식점 가운데는 정직한 편이라고 보는데, 간만에 먹으면서 생각했다. 국물에 배춧잎 한두 장이 딸려 나오는데, 이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가장 궁금한 건 출처 또는 용도. 국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맛을 더하기 위해 통으로 넣은 것을 두었다가 분배해서 내는 걸까, 아니면 그와 별개로 주문에 맞춰 개별 뚝배기에 마지막으로 끓여 내면서 더한 것일까. 주문 후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할텐데, 그만큼 자주 가는 편도 아니고 때마다 들쭉날쭉해서 쉽지 않다. 분해 직전까지 푹 익은 상태를 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데(특히 콩나물의 익은 정도까지 감안한다면), 이미 그만큼 익었다면 다른 그릇에 옮겨 담기도 쉽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이 또한 좀 애매하다.

어쨌든, 관건은 그게 아니다. 이렇게 완전히 숨이 죽은 채소를 굳이 국물과 함께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만약 국물에 맛을 더하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면 이젠 과감하게 버려도 된다고 본다. 숨이 완전히 죽어 버린 채소의 질감은, 물론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썩 유쾌하지 않다. 특히 그 매개체가 국물, 그것도 뜨거운 것이라면 더 그렇다. 배추는 세로로 질긴 결을 지니고 있다 보니, 때로 물크러지도록 익더라도 먹기가 썩 편하지 않다. 칼 종류가 딸려 나오는 것도 아니니 결국 한꺼번에 먹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로 찢어야 되는데 한식 뚝배기의 뜨거운 국물을 머금고 있으므로 꽤 높은 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육개장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파도 마찬가지. 파란 윗동은 익혀도 질기고, 하얀 아랫동은 진이 뜨거운 국물과 섞여 흘러 나온다. 미끌거려 썩 유쾌하지 않지만, 혀나 입 천장을 데기도 쉽다. 왕왕 겪지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재료의 역할을 정확히 설정하는 한편, 맛의 의미를 재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 끓여 맛에 공헌했다면, 그냥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 양파든 마늘이든 당근이든, 곤죽이 될 때까지 끓인 걸 굳이 먹어야 할까. 각자의 맛을 국물에 다 내줬다면, 아까워할 이유가 없다. 굳이 채소를 국물과 함께 먹고 싶다면, 새것을 다시 더해 끓이면 된다. 몸바친 채소의 맛이 밴 국물에 다시 채소를 익힌다면, 그 맛도 훌륭할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채소의 조리 자체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 또한 느낄 것이다. 각자의 특성을 감안한 중간지점을 찾을 수 있는가. 아예 날로 먹거나 국물, 저온의 “볶음”을 통해 완전히 숨이 죽어 버릴 때까지 익히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채소는 육류에 비해 조리 실패의 확률이 높아,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채식, 아니더라도 채소 위주의 식생활을 꿈꾸는데 실패한다면,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식단 계획과 맞물려 조리 기술의 부족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국물+장류 문화 덕분에 모든 것을 함께 넣고 오래 끓이면 조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는데, 개별적인 특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도 됐다. 단지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재료의 최선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5 Comments

  • Sscfly says:

    그 숨죽은 채소가 한국의 맛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는지요?
    감자탕의 시래기는 일부러 시켜먹기도 하죠?

    • nibs17 says:

      시레기 빼고 먹는 사람으로써 한국의 맛이란게 당췌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 자거스 says:

    블루마스님의 이론은 맞고 정확합니다. 그런데 한국손님 10명 중 8~9명은 그거 전혀 신경쓰지않죠. 그리고 해장국에서 삶고 난 배추.채소를 제거하는 것도, 우리 역사가 예를 들어 경상도 같은 곳은 가난한 소농 위주라, 우려낸 채소를 버리고 하는 것도 솔직히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워낙 빈한하게 살았으니까요..언제 한번은 적어보려는데.. 식당들이 뻔할뻔자로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 손님 10명 중 8~9명이 가만히 먹거나 선호하니 그리 하는거죠..사람들은 찌개에 재료 넣는 순서 따지지않고 그냥 끓여 먹습니다..
    만약 식당에서 우리고 난 후 역할을 다 한 해장국의 배추나 시래기를 뺀다면… 한국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여기 국물에 야채도 넣지않고..야박하구먼’ 분명 이 소리 나옵니다;; 국물맛에서 무슨무슨 재료가 들었는지 잘 파악못해요. 우리 서울의 현실은 국물음식을 낼때 국물 잘 우려내는것보다, 위에 그럴듯한 고명을 얹는게(!) 중요합니다[…] 몇년전 정독도서관 북촌에 [떡국정원]이라고 쇠고기국물 잘 우려내고 금방 도정한 쌀떡을 넣어 파는 정직한 곳이 있었습니다. 근데 위에 쇠고기나 그럴듯한 고명은 올려놓지않더군요. 결국 잘 팔리지않고 망했습니다.. 식당의 모습과 현실은 그 도시 시민들의 수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겁니다~

    • jo says:

      그거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1인 여기 있습니다 – _-;;;

      지금은 타국에서 살면서 전혀 다른 음식을 먹다보니,
      차이가 느껴지고 꼭 그래야만 하나 의문이 드는데,
      사실 예전에는 크게 문제를 못 느꼈어요.
      그냥 인식 자체를 못했죠.

  • 자거스 says:

    블루마스님의 이론은 맞고 정확합니다. 근데 한국사람 10명 중 8~9명은 그거 전혀 신경쓰지않죠. 그리고 해장국에서 삶고 난 배추.채소를 제거하는 것도, 우리 역사가 예를 들어 경상도 같은 곳은 가난한 소농 위주라, 우려낸 채소를 버리고 하는 것도 솔직히 금기에 가깝습니다. 워낙 빈한하게 살았으니까요..
    식당들이 뻔할뻔자로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 손님 10명 중 8~9명이 가만히 먹거나 선호하니 그리 하는거죠…
    만약 식당에서 우려내고 역할을 다 한 배추, 시래기 등을 빼고 내온다면..손님은 ‘여기 이제 채소도 안들어가고..야박해졌네’ 분명 이 소리 나옵니다;; 국물만 먹고 무슨무슨 재료가 들었는지 파악하지 못해요.
    몇년전 북촌에 ‘떡국정원’이라고 쇠고기국물 잘 뽑고 금방 도정한 쌀떡 다루는 식당 잇었는데, 특이하게 위에 고명을 넣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게는 매출부진으로 망했죠. 한국인 10명중 9명은 국물맛 자체보단 표면에 무슨무슨 고명이 들어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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