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의 카레

IMG_0017저녁때가 가까워 오면서 카레 생각이 났다. ‘커리’ 말고 ‘카레’말이다. 전자를 만들 기본 재료, 즉 향신료는 언제나 집에 있다. 조합해서 볶아 갈아도 되고, 향신료만 따로 가지고도 있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정육점에서 고기만 사오면 금방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만들 재료는 오히려 가지고 있지 않다. 고형카레 말이다. 그래서 좀 멀리까지 나갔다 왔다. 그것도 빈속으로. 요즘 나는 빈속으로 살아 있는 경우가 잦다. 지난 주엔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 두 끼까지 먹은 날이 드물었다. 나는 아마도 그 원인을 비교적 자세하게 헤아리고 있지만 끄집어 내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자괴감이 괴롭힐때 노동이 도움된다는 건 의외로 늦게 배운다. 나에게는 역시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런 노동의 핵심이다. 카레를 끓이고 브로콜리를 정식으로 데쳤다…라고 해봐야 큰 솥에 물을 열심히 끓이는 것 뿐이지만. 이런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은 대개 그다지 맛있지 않다. 요즘 내가 한 음식은 평소보다도 더 맛있지 않다. 그래도 만들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오늘 끓인 카레에서는 자괴의 냄새가 풍겼다. 새삼스러울 것이 있는가? 없다.

5 Comments

  • peptobismol says:

    정말이지 맛없게 생겼네요. 뭉쳐있는 밥도 그렇고, 채소 다듬은 모양새도 그렇고. 자괴감 느껴야 마땅할 듯.

  • Hyoin Choi says:

    ^^; 제 눈엔 맛있게 보이는데요~;;; ㅎㅎ 커리/카레 다 좋아해서 그럴까요?? 공복이 오래되면 기운 없구 힘들어요~ 잘 챙겨드시면 좋겠어요>.<

  • 한경Gerome says:

    맛은 바르게 된 것 같은데요 ㅋ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