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를 위한 발상 전환

IMG_9339김치찌개에 대해 누군가 말하는가? 따지고 보면 하찮은 음식일 수 있고, 막말로 ‘간지’도 안 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음식이 한식의 거울 역할은 아주 훌륭하게 한다.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습관을 꾸역꾸역 담아 끓여낸다. 누구도 별 생각하지 않고 팔고 먹지만 개선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어제는 차 정기점검 때문에 잘 안 가는 동네에 갔다가 식육식당의 점심 메뉴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백만 년 만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드문데, 그래서 막상 찾아보니 동네가 불모지에 가까웠다. 변변한 식당, 또는 동네 밥집도 없는 분위기. 식육식당이라면 자투리 고기가 많을 것이므로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을 가능성이 높지만, 냉면도 판다는 사실에 어째 두려웠다. 고깃집의 냉면, 그거 무서운 존재 아닌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에 덩그러니 앉아 20분 이상을 기다려 김치찌개를 받았다. 생각보다 꽤 멀쩡했다. 무엇보다 잘생긴 계란말이가 마음에 들었다. 김치찌개를 시켜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김치를 또 주지 않는 것도 좋았다. 밥도 먹을만 했다. 찌개도 총체적으로는 멀쩡했다. 하지만 예상한 바와 같이 고기는 익었지만 분해되지 않아 먹기가 힘들었다. 예상대로 껍질과 비계가 붙은 자투리를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만 했다. 잠재력이 훌륭한 부위였지만 찌개국물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 맵고 얄팍했다.

흔히 ‘돼지=지방’이라 여긴다. 정확하게는 아니다. 삼겹살처럼 지방층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며, 요즘의 돼지는 갈수록 날씬해지는 추세다. 가공육 문화가 돼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도 ‘분해 후 재조립’을 통해 지방을 분배해 새로운 균형을 갖춘 고기를 먹기 위함이다. 이런 돼지의 비계를 덩어리째 쓰려면, 장점을 끌어내기 위해 은근히 오래 조리해야 한다. 20분 끓이는 동안 주방에서 ‘아냐 더 오래 끓여야 돼’라는 말소리를 들었는데, 분 단위로는 어림도 없다. 또한 센 불로 팔팔 끓여봐야 소용없다. 서너 시간은 끓여 기름을 완전히 녹여 내야 한다. 동파육을 생각해보라. 그렇다고 손님 받아 놓고 서너 시간 끓여 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손질하고 남은 온갖 자투리 부위를 한데 담아 아주 약한 불에 오래 끓이기만 하면 된다. 한식당에서 들여 놓을 가능성은 없겠지만(왜?), 낮은 온도 오븐에 두면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사실 콩피를 만드는 과정이다. 동물의 고기를 그 지방에 끓여 그대로 익힌다. 온도는 오븐 기준 섭씨 120-130도. 지방이 완전히 녹아 나올 때까지 익힌 뒤 그대로 식혀 굳은 지방에 바로 보관한다. 콩피는 지방으로 미생물 발생을 억제하는 가공 및 저장법이니 오래 둘 수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이를 정해 놓은 분량 만큼 떠서 물과 섞어 끓인다. 바로 녹으면서 두터운 바탕을 만든다. 김치는 애초에 반조리된 채소고, 두부는 완전 조리된 재료니 적당히 끓여 바로 낼 수 있다. 식탁에서 완성하는 설정이라면 이대로 내기만 해도 끓으면 바로 먹을 수 있다. 20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김치찌개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직장인의 바쁜 점심 시간에는 한없이 길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미리 거치면 조리 시간은 줄지만 더 잘 익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 지방이 제대로 녹아 나왔으니 지용성인 고춧가루 위주의 국물도 훨씬 더 두텁고 맛있다.

<모모푸쿠>의 데이비드 장은 삼겹살을 높은 온도에서 구울때 나오는 기름을 다른 요리에 적극적으로 써서 ‘돼지 중심(pig-centric)’이라는 별명을 얻었노라고 이야기한다. 식용유가 없던 시절에는 돼지기름을 번철에 둘러 빈대떡 등을 부쳤고, 사실 식물성 기름으로 부친 것보다 더 맛있다. 삼겹살이 가장 인기 있는 부위인 걸 감안하면 돼지 비계의 맛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딱히 많은 인력과 주의 집중이 필요하지 않은 준비 과정을 거치면 실제 조리의 시간은 줄이고 완성도는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상품가치 없는 자투리를 요긴하게 쓸 수도 있다. 인력이나 여건보다 발상의 문제다.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실행에 옮기고 있을 거라고도 확신한다. 이와 가장 근접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이가 바로 백종원이다. 대량 조리를 위해 미리 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준비했다가 마지막에 조합해 끓여 내는 방식이다. 다만 한국식 ‘볶기’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하얀 기름이 나올 정도’라 돼지의 깊은 맛을 우러내 주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1 Comment

  • 자거스 says:

    그나마 이런 찌개는 양반밑의 중인은 되는듯 합니다.
    요새 근돼지고기 김치찌개라고..뻘건 생돼지고기를 세수대야형 냄비(혹은 세수대야)국물에 그대로 집어넣어 20~30분 끓이는 형편없는 술안주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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