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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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마음 속에 추억의 식당 하나씩은 품고 산다. 사라져 다시 맛볼 없는 음식. 나에게는 엄마 만두’가 있. 아니, 엄마가 빚은 만두 이야기가 아니다. 강남역 CGV 뒷골목의 만둣집이다. ‘엄마만두 조합이라니, 이름만으로도포스 풍긴다. 정말 그러했다. 허투루 지은 이름이 아니었다. 얇은 피가 착착 감기는 찐만두도 기가 막혔지만 북어구이 정식이 맛있었다. 만둣집 메뉴치고는 다소 엉뚱했지만 북어는 물론, 딸려 나오는 깻잎 장아찌가 훌륭했다. 하필 입대 직전 발견한 불행이었다. 6개월도 지나 휴가를 나와보니 사라진 . 그야말로 망연자실, 털썩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 아아, 국방의 의무. 자리엔 건물이 들어섰고, 1층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차지했다. 어언 20 전의 일이다.

이사를 와서는, 하루는 동네를 바퀴 돌았다. 갑자기 만두가 너무 먹고 싶어져 찾아 나섰다. 대개 동네에 만두집 하나 정도는 있다. 발효피를 직접 빚어 속을 채운 왕만두, 중국식으로는 포자다. 찐빵도 판다. 이전 동네에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전멸. 반경 5km 내로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동네였다니. 매서운 전세 대란 속에서 예산에 맞는 집이라며 기쁨에 겨워 이사온 동네였다. 우연히 들어간 부동산이 특약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 대신 아무런 생활 편의 시설이 없었다. 고적 편의점 덜렁 하나. 저녁 밥상에 오이 하나 무쳐 올리려도 도보 왕복 20. 그까짓 , 미리미리 장봐오면 되지 않겠어.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만둣집이 하나 없었다. 찾다 지쳐 지하철 근처 분식점의수제만두를 1인분 먹고는 비참함을 안고 돌아왔다


만두. 공명의 지력으로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 남만 정벌에서 돌아오는 , 여수에서 풍랑을 다스려 강을 건너기 위해 사람 머리 대신 밀가루로 비슷하게 빚어 , 등으로 속을 채워 공물로 바쳤다는 . 직설적인남만인의 머리(蠻頭)’ 대신속이는 머리(瞞頭)’ 만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만두의 정체성은 동사, ‘빚다채우다 달렸다. 사람 머리의 모사가 기원이었으니 일단 빚어 껍데기 또는 모양을 잡고, 생명을 불어넣듯 , 또는 속을 채운다. 분명 핵심 과정인 맞지만, 정말 둘만 남은 만두는 앙상하기 그지 없다. 피도, 소도 사온다. 가게에서 체면치레하듯 빚고 채우기만 내놓는다. 따옴표의수제. 내가 대신 닭으로 먹은, 전형적인 지하철 분식집 만두 말이다. 어딜 가도 맛이 똑같다


이러한 만두의 지평에서, 기계보다 못한 손의 처지를 읽는다. 개성의 대가로 효율을 좇는 기계화 시대에, 손이란 잃어가는 인간성의 매개체라는 인식을 누려왔다.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빵과 치즈를 중심으로 각광받는 소규모 공방(artisan) 조금씩 만들어 대량생산의 틈새에서 살아 남는다. 하지만 만두가 대표하는 한국의수제 기계를 기계적으로 대신하는 인간이다. 뇌와 인간성의 구현 도구라는 인식과 과정을 굽어보는 권한 없이 마무리만 맡는다. 서민 음식이라는 정서적 굴레도 압박에 가담한다. 비싸면 안되지만 손으로는 빚고 채워야 한다. 딜레마적 기대를 따르느라 만두는 발전을 못한다.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심지어 고급 음식 대접 받는 이북식 만두도 천편일률적이다. 두껍고 텁텁한 피가 터져 나오는 , 완성도도 떨어진다

이러한 틈새를 중국식 만두가 조금씩 넓혀 나간다. 동포나 중국인이 직접 운영한다. 비슷한 가격대지만 빚고 채우는 과정이 체면치레에 그치지 않는다. 피도 밀고, 속도 버무린다. 가격에 얽매어 좋은 재료는 쓰니 한계는 분명 있다. 하지만 이왕 쓰는 조미료라도 세련되게 쓰고, 곧잘 찌고 굽고 튀긴다. 아닌, 나름의 닭이다. 한편 완전한 기계의 산물인 냉동만두도 나름의 몫을 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수제보다 깔끔하고 맛있다. 손의 위기인가? 아니, 그런 손을 생각해낸 머리의 위기다. 자승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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