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IMG_8194옛날 전주에 길례라는 여성이 살았다. 미모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동구 밖 천하대장군이 그녀를 훔쳐보다 지하여장군에게 혼찌검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찌어찌 명문가의 자제와 인연을 맺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가 소금장수인데다가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했던 것. 당시 사회상으로 계층 격차가 심한 결혼이었다. 이를 빌미로 길례는 호된 시집살이를 했다. 어찌나 호되었는지 소문이 친정까지 날 지경. 길례 아버지는 궁리 끝에 사돈 부부를 모셔 식사를 대접한다. 흑산도 홍어에 목포 세발낙지, 영광 굴비에 해남 참게젓까지. 거나한 차림에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던 바깥사돈도 음식을 입에 가져 가는데 웬걸,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 모든 음식에 소금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것.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길례 아버지, 소금장수가 넌지시 말한다. ‘이 세상에 소금 없으면 우리가 어찌 하룬들 살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저 같은 소금 장수는 어떻고요?’

요즘 한참 뜨거운 소금, 천일염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단순히 소금 이야기라 그렇기도 하지만, 한 상 가득 차려 놓았는데 정작 별 맛 나지 않는 상황이 비슷해서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건 좋다. 신안이 대표하는 천일염 생산에는 개선점이 많다. ‘염전 노예’라 알려진 노동 여건 및 인권 문제도 있고, 장판을 이용한 위생 문제도 짚어볼만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문제는 정작 소금이나 음식 맛과는 별개다. 나쁜 환경은 개선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 맛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소금의 특성 때문이다. 꼭 필요하지만 조금만 쓰므로 어떤 종류라도 크게 상관 없다. 현재 소금 논란이 ’천일염 대 정제염’ 구도로 흘러가고 있지만 어떤 걸 쓰더라도 상관이 없다. 간만 잘 맞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사실, 현재의 소금 논란은 지극히 싱겁다. 핵심인 음식의 맛을 찌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에 나쁘다니 싱거워지는 소금간 대신 단맛과 매운맛이 강해지는 한국 음식이다. 맛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건강 관련 인식 때문에 소금에 대한 연구는 무척 활발하다. 맛 정보도 풍성한 가운데 결론은 늘 같다. 첫째, 성인이라면 나트륨 일일 권장량은 2,000~2,500mg 사이다. 세계 보건 복지기구 기준이다. 소금(NaCl)로 치면 5g 수준이다. 둘째, 그만큼 섭취하는데 천일염, 정제소금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공신력으로는 세계 제일인 비영리 의료 단체 마요 클리닉(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소재)에서도 ‘나트륨양이 같으므로 다 똑같은 소금’이라 밝힌다. 개성을 불어넣는 요소라 믿는 광물은 미량이므로, 맛과 효능 모두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 신안 천일염은 물론 프랑스의 게랑드, 하와이의 붉은 소금이나 히말라야의 검은 소금이, 허무하겠지만 다 똑같다.

그렇다면 소금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입자의 크기나 모양을 기준으로 삼는다. 일반 조리, 다목적용이라면 2mm 안팎일때 손가락으로 집어 느낄 수 있다. 양 가늠이 쉬워진다는 말이다. 한편 육면체보다 돌을 깬 듯 우툴두툴한 비정형이 재료의 표면에 더 잘 달라붙어 효율적이다. 표준처럼 많이 쓰는 유태인의 정제 소금 코셔가 이렇다. 그네들 특유의 염장법 코셔링(koshering)에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제품 다각화로 국산도 이런 입자 모양과 크기의 소금을 동네 마트에서 살 수 있다. 한편 굵은 정육면체 알갱이의 천일염은 일석이조로 쓸 수 있다. 김치, 채소 절임엔 그대로, 차가운 국물, 나물 등 잘 안 녹는 상황엔 통후추 갈이에 담아 아주 곱게 갈아서 쓴다. 한편 하와이 붉은 소금, 히말라야 검은 소금 같은 종류는 장식용으로 제 몫을 한다. 녹혀 간을 맞추기 보다 완성된 음식 위에 고명으로 올려 색깔은 물론, 소금 알갱이가 씹히는 맛과 폭발적이고 순간적인 짠맛을 주는데 쓴다. 영국 대표인 몰든 소금이 이 용도로 유명하다. 눈의 결정처럼 생겨, 스테이크 고명으로 올리면 부드럽게 씹히며 짠맛의 액센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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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 모도리 says:

    천일염을 문제삼고 있는 분들은 대안으로 자염을 제시하시더군요.
    자염에 대한 평론가님의 의견이 궁금했는데, 이 글에서 나온 게랑드 소금같은 해외 유명 소금에 대한 평론가님의 시각과 같을까요?

    • bluexmas says:

      굳의 천일염에 대안이 필요한지 그걸 이해 못하겠습니다. 정말 천하에 없이 비위생적으로 만든다고 해도 과연 하루 5g 속에 든 무엇인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거듭 말하지만 입자 크기 등에 맞춰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쓰면 됩니다.

  • goldmund says:

    소금, 천일염 문제는 천일염 대 정제염 구도로 흘러가는게 아니라 잘못된 정보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그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게 아닌가요? 애초에 천하에 없이 비위생적으로 만드는 소금이어도 하루에 기껏 써봐야 5g이니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한게 아니라 우리 천일염은 위생적인 환경에서 몸에 해로운 성분또한 없고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주장을 해오던거에 대한 비판이라 생각하는데..
    몸에 영향을 미칠 수준이 아니기에 거짓된 정보에 대한 비판도 없이 용도에만 맞다면 천일염을 써도 상관 없다는 입장이신지요?

    • bluexmas says:

      그래서 정제소금이 천일염의 “대안”인 것은 잘못된 정보가 아닙니까? 네, 천일염의 미네랄 효능이 좋네 어쩌네 하는 건 물론 잘못된 정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 또는 정치적 맥락 때문에 정제소금이 천일염의 “대안”인 건 아닙니다.

  • Man of Letters says:

    핵심은 님이 잘못 짚으신 것 같습니다. 소금의 논란은 맛의 중심을 둔게 아니랍니다. 아울러 정제염과 천일염의 대결구도도 아니고요. 정부기관부터 시작해서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정보로 국민들의 호도 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소금에 대해 생긴 선입관에 대한 제고입니다. 정제염과 천일염에 대한 맛의 차이는 일반인들이 구별해기가 힘듭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간을 맞춰주기만 하면 제 역할을 끝내는데에는 천일염과 정제염 별반 다를바가 없지요. 비교실험을 정제염이랑 많이 해서 그런지 정제염이 천일염의 대안이냐 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 된 듯 한데 분명한 건 핵심이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매일 먹는다고 가정했을때 수십년 동안 안 좋은 걸 장복한다면야 영향은 어느정도 미치겠지요. 하지만 그 영향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왜 이제껏 그게 좋은거라고 이걸 먹어야 한다고 국민들을 우롱해왔느냐 이겁니다.

    • bluexmas says:

      바로 그 ‘소금의 논란은 맛의 중심을 둔게 아니랍니다’에 대해 얘기를 하는겁니다. 천일염 효능으로 국민 우롱한 이들을 징벌하면 현재 한식에서 소금 쓸 줄 모르는 문제가 바뀝니까? 음식인데 음식 얘기 안 하는 현실을 이야기한 거라는 말씀.

  • Sean Lee says:

    제게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 맛을 내는 재료가 깨끗하게 만들어져있는가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느껴져요. 비록 하루 5g에 불과하고 그 정도로는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음식의 맛 보다는 생산과정과 잘못된 홍보에 초점이 맞춰진 지금의 소금 논쟁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물론 음식이 싱겁고 달고 매워지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건 핵심이라기 보다는 완전히 별개의 주제인것 같아요.~

    • bluexmas says:

      원칙적으로는 말씀이 맞습니다. 단지 모든 논란이 그쪽으로만 흘러 간다는 것을 지적할 뿐입니다. 거기에 이유가 있다고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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