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20)-음식과 시각매체, 사진(1)

IMG_4231

핀란드의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의 에세이 <건축과 감각(The Eyes of the Skin)>을 번역본으로 최근 다시 읽었다. 옮긴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는 압도적인 시각 위주의 현대 건축 문화를 비판한다. 건축이 보기 좋은 것만 좇아 공감각적 가치에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저 건물 멋있다’가 찬사로 통하지 않는가. 눈에 담기는 멋은 건축의 극히 일부다.

이는 비단 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남 주요 지하철역의 성형외과 광고와 외모 지상주의가 반증하듯, 사실 일상이고 현실이다. 음식도 피해갈 수가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은가. 굳이 떡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한 접시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전부 갖추는 서양 요리도 ‘일단 눈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플레이팅이 굉장히 중요하다. 맛과 양은 상수, 담음새가 변수가 된다. 물성 자체를 바꾸는 현대 요리가 아니라면, 최고의 맛과 적당한 양을 만족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시각적 해법을 찾는다. 단지 보기에 좋도록 균형을 깨는 요소를 올리거나, 맛의 표정에는 들어맞되 양을 지나치게 많거나 적게 담는 상황은 피한다. 이 3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셰프의 능력이다.

물론 시각 위주의 문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음식은 큰 빚도 졌다. 브라운관에 진출한 덕분에 문화 전체의 저변을 엄청나게 넓힐 수 있었다. 줄리아 차일드의 최대 업적은 책 <프랑스 요리 예술 통달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지만, 프랑스 요리의 대중화에는 그녀 출연의 텔레비전 요리 쇼의 역할도 꽤 컸다. 1993년 개국한 푸드 네트워크 또한 초창기에 그녀 쇼의 영상과 셰프 에머릴 라가시(Emeril Lagasse)의 라이브 쇼(Emeril Live)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물론 인터넷 시대인 요즘, 음식 문화는 텔레비전의 영역을 박차고 나왔다. 이제 유튜브만 뒤져도 독학이 가능할 정도의 음식 관련 콘텐츠가 넘친다. 물론 청각도 거들었겠지만, 음식에 중요한 후각을 완전히 배제시키고도 시각의 힘으로 저변은 이만큼 넓어졌다.

이토록 영향력이 강하니 음식 문화에서 시각은 상수다. 하지만 그 의존도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특히 요즘 민감한 사안인 ‘음식 사진 찍기’의 문제에서 그러하다. 이게 사실 민감한 사안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단 도구의 발전이 멍석을 깔아주었다. 스마트폰에 딸린 카메라는 이제 음식 사진에 과분할 정도로 발전했다. 작고 빠르고 잘 찍힌다. ‘리터치’를 알아서 잘 해주는 기특한 앱도 많다. 먹고도 뭘 먹었는지 몰라 사진으로 때울 요량인 파워블로거가 아니라면 굳이 ‘대포(DSLR)’를 꺼낼 필요조차 없어졌다. 식사 경험의 일부로 잽싸게 한 장 찍는 정도라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이젠 그것도 즐거움의 일부며, 비중도 크다.

하지만 음식 사진 찍기가 그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데이비드 장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셰프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모모푸쿠 코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했다. 벌써 5년도 더 전의 일이다. 같은 미슐랭 별 두 개인 프랑스의 라 그르누이에르(La Grenouillere)도 메뉴에 사진 촬영 금지를 못박아 최근 BBC 뉴스에 등장했다. 물론 이들만이 아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레스토랑 전체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인데, 주범은 플래시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조명은 대개 어둡다. 노이즈를 감수하고 ISO수치를 높여도 사진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플래시는 당연히 해결책이 아니다. 손님이 놀라는 것도 문제지만, 사진도 되려 악화시킨다. 마샤 스튜어트의 인스타그램 음식 사진도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 미슐랭 별 세 개짜리 요리도 막말로 개밥처럼 사진에 담겼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그러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맛이다. 사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이에 음식 맛의 정점을 놓친다. 주방의 노력도 자연이 관리하는 시간의 창마저 넓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전인 수플레를 예로 들어보자. 계란 흰자를 거품기로 저어 공기를 불어넣은 머랭 덕에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지만, 그 순간이 정말 짧다. 과장을 조금 보태 찰나라서 SNS에 올릴 ‘머니 샷’을 찍는 사이 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미 수플레로서의 정체성은 잃고, 음식의 참맛은 카메라가 본다. 이는 셰프가 가장 아쉬워하는 상황, 공들여 요리를 준비한 사람에게 당연히 결례다. 일전에 어느 바리스타도 이런 상황에 대해 불평한 적이 있다. 파워블로거가 일행과 함께 찾아와서는 카페 라테가 식을 때까지 사진만 찍어대고는 ‘원샷’을 했다는 것이다. 내 돈 낸 건데 식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고? ‘인증샷’을 찍기 위해 찾아가는 순간, 음식은 피사체로 변질된다. 그것이 정말 음식을 향한 관심의 표현일까?

최근 트위터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루이 씨케이(Louis C.K.)의 ‘짤방’이 절찬리에 돌았다. 자학을 주무기로 자국문화를 비판하는 그가 입을 연다. ‘아니, 아이들 춤추는 행사에 동영상 찍느라고 스마트폰으로 다들 눈을 가리고 있는 거에요. 무슨 증인 보호 프로그램인가? 전부 다 코 앞에 있는 애들을 나쁜 화질로 보고 있는 거죠. 그냥 눈으로 보면 완전 고해상도잖아요.” 기록을 우선 순위에 두면 그 만큼 ‘지금, 여기’의 즐거움이 떨어진다. 눈으로 즐기는 것 사이의 차이가 저렇다면, 원래 입으로 즐기는 것은 어떻겠는가. 블로그를 위한 ‘한 장’을 찾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월간 ‘젠틀맨’ 2014년 5월호

2 Comments

  • 여전규 says:

    밥먹으러 간게 아니라 사진찍으러 간 듯한ㅎㅎㅎ

    포크나 젓가락을 들어올리는 순간 개념없거나 생각 없는 이가 되어 버립니다ㅠ

    주객전도도 이만한게 없는거 같아요

    • bluexmas says:

      추억만들기에 사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좀 더 빠른 손놀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