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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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어쩌구 하는 비유가 있다.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앞면만 보인다는 것. 보이는 면인 ‘앞면’은 매끈하지만 안 보이는 면, 즉 ‘뒷면’에는 많은 충돌구, 산맥, 융기가 있다는 것.

기본적으로 삶은 구차한 것이라 늘 생각한다. 원해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많은 말을 붙일 수 있다. 하지만 별로 그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삶은 충분히 구차하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이렇다보니, 언제나 삶의 일부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내가 드러내는 삶은 내 삶이되 정확하게 내 삶이 아니다. 말하자면 달의 앞면 같은 것이다. 뒷면은 굳이 보여줄 이유가 없다. 보여주고 않고, 궁금해야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뻔하다. 보여주고 싶지 않고 보는 것 모두 구차하니까.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놓은 앞면을 짜맞춰 뒷면까지 만든다. 그리고 그게 진짜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별 생각이 없다. 그게 재미있다면 내가 나서서 막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단서가 있다. 나에게 그 짜맞춘 삶에 대해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건 무슨 퀴즈 같은 게 아니다. 또한 보여주는 걸 전체로 생각하라고 말한 적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구차하므로 그런 부분은 까놓지 말자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걸 기대한다. 서로 그래도 된다고 합의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나는 누군가의 구차한 면에 대해 딱히 알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합의하는 관계는 지극히 적어야만 한다고도 생각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남의 삶에 대해 상상해도 된다. 나에게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이해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너를 보니 이렇게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합의는 깨진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살지 않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조각을 어떻게 끼워 맞춰 만들더라도 그건 내 삶이 아니다.애초에 내보낼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조정 및 통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걸 내 삶일거라 믿는 게 즐겁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나에게 그 짜맞춘 결과를 말하는 건 극구 사양하며 한편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안다’는 이야기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맞지도 않다. 글에 드러나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일종의 앞면인 것이니, 그걸 짜맞춰서 삶을 사는 사람까지 알 거라 생각하고 한 술 더 떠 본인과 대조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만약 쓰는 어떤 이가 앞뒷면 구분의 중요성을 모른다거나, 의식적으로 뒷면을 걸러내지 못하거나, 아예 앞뒷면을 구분하는 능력을 못 갖췄다거나, 또한 의식적으로 뒷면을 섞어 흘려 내보낸다면 멍청한 짓이라고 믿는다. 쓸 거리가 없는데 글은 꼭 쓰고 싶어서?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글을 보면 사람을 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은 건방지다고 여긴다. 그러나 많이들 그렇게 말한다. 트위터에 쓴 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려했다는 이야기를, 만난 자리에서 꺼낸 사람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냥 나라는 사람을 만나면 될 일이다. 이건 의외로 아주 간단한 일이다.

달은 왜 앞면만 보여주는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으므로 지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누군가는 이런 종류의 삶을 특별하게 포장하는게 도움이 될거라 믿을 것이다. 난 아니다. 어떤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 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되레 그 반대로 구차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걸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저 거기에 담긴 것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내 삶이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임의로 판단하고 내게 말하는 건 사양한다.

5 Comments

  • donask says:

    세번째 문단 보여주고 않고 -> 보여주고 싶지 않고

    글을 보고 그 너머의 사람까지 보려는 건 본능인데, 그걸 드러내는 것까지 사양하시는군요. 글은 글이오, 사람은 사람이니까. 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건 좀 불가능 해보이는데요. 작가의 작문은 배우의 연기와는 다르니까요.

    • 은향씨 says:

      글을 보고 너머의 사람을 보려는게 본능(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이라 해도 본능을 드러내는게 꼭 옳지만은 않을 뿐더러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불쾌하다면 사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많은 경우에 글을 통해 사람을 볼 수 있겠고, 저 역시도 글을 쓸 때 제가 많이 묻어나오는 편입니다만, 글을 통해 본 사람이 반드시 그 사람의 온전한 전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글을 통해 짜맞춘 이미지를 글을 쓴 그 자신에게 들려주는건 무례한 일이 아닐지요.

      작가의 작문이 배우의 연기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배우의 연기를 배우 그 자체로 보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그 배우와 완전히 독립된 것도 아닌 것처럼, 글 역시도 작가와 완전히 독립된 어떤 것은 아닐지언정 작가와 동일한 작가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무엇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인장이 아님에도 감히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__)

    • bluexmas says: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상황은 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다릅니다.

  • Lori says:

    혹시 제가 쓴 글 때문에 기분 나쁘셨어요? 저는 전혀 나쁜 의도로 쓴 글이 아니에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서로 위로하고, 작은 일이라도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괜찮다. 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저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받아들이는 상대가 기쁘지 않았다면 괜찮다고 할 수 없죠.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따듯한 성탄절 보내시고, 앞으로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랄게요.

    • bluexmas says:

      그런 의도를 가지시는 건 제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한 어쩌면 감사드려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걸 저에게 말씀하시는 순간 균형 또는 현재의 질서 같은 것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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