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1988 신해철


아침에 일어나보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판매가 발생했으니 가능한 빨리 배송을 해달라고. 안 읽는 책을 다 팔아버린 지가 몇 년인지라 도무지 감이 잡히는 게 없어, 잘못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심때가 지나서였나, 그게 언제 올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다가 원래 내 것도 아닌 신해철의 모노크롬 CD 주문임을 기억해냈다. 뭐 이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사실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지라 오래다. 내가 한참 밖에 나가 살았던 것도 영향이 있으리라. 사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도 음반은 챙겨 들었지만 그의 큰 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아 오늘, 넥스트의 2집을 아이폰에 채워 집을 나섰다. 기억하기로 1995년, 1주일에 CD를 한 장씩 사던 시절 종로 3가의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산 것이다. 서울레코드가 아니고 그 몇 집 아래의 굉장히 작은 매장이었는데, 상호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그땐 꽤 열심히 들었지만 딱 한 번 끝까지 다 듣자 다시 듣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마저도 그의 죽음 때문이라기 보다 그 시절에 얽힌 내 기억 때문에 다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한 편 써서 그의 기억하는 건 맞는 일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대학가요제의 영상, ‘빠라라 빠라바밤’하는 신디사이저를 듣던 1988년의 그 순간을 아직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 이제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슬슬 눈치를 보며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카세트 테이프를 사 듣고 ‘음악세계’를 사보기 시작하던 그 언젠가의 토요일 저녁에 바로 저 ‘빠라라 빠라라밤’을 듣고는 ‘오오, 이것은 1등이야’라고 넘겨 짚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기억하기로 그 해 여름, 이상은이 ‘담다디’로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는데, 마지막으로 나왔던 그녀가 ‘대학가요제도 맨 마지막에 나오는 팀이 1등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검색을 대강해서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 한 순간만으로도 나는 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빠른 죽음을 기억하려 한다. 예상치 못한, 차례대로 찾아오지 않는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긴다. 그가 사랑받은 음악가였다는 사실 위에, 그러한 사실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그의 전성기에 10~20대를 보낸 세대라면 그 시기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기성세대가 된 직후 일어난, 급작스러운 죽음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요즘 현실의 극단적 버전 같아 더 큰 충격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을 별로 인식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보고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죽고 산 모두에게 딱히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삶의 유한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죽음 없이도 언제나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1988년의 어느 순간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겨주었던 음악가 신해철의 명복을 빈다. 1988년이 이제는 그냥 과거가 아닌, 그야말로 죽어버린 시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거의 다 빠져나와서는 뒤를 돌아봐 다시 끌려 들어갔다는, 그리스 신화의 그 누구였더라? 하여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까이 소환할 수 있는 과거가 이젠 그렇게 어둠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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