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저녁(8월 다섯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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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주 전의 저녁에 대한 글을 이제서야 올린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요즘 금주 중이라 할 수 있는 술 이야기가 없다(…ㅠㅠ).

1. 알사스 블랑과 구운 가지를 곁들인 그린 커리

추석 연휴 직전 적당한 가격의, 내가 마시기 위한 와인을 찾는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행색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일이었다. 몇몇 백화점은 이미 선물세트로 가뜩이나 넓지도 않은 매장을 잔뜩 채워놓아서 조명도 어둡고 복도도 좁아 평소보다 뭔가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불편했다. 따라서 어딘가-현대 본점 같은-에선 내가 보기보다 직원에게 물어봐서 찾기를 원하는 눈치였는데, 그렇다고 물어봐봤자 나오는 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 와인 선물세트라는 것도 웃긴 게, 지난 몇 해 동안 깔리는 걸 가만히 들여다보면 1. 매장에서 평소에 잘 보지 못한 것들 2. 가격대에 상관없이 딱지가 유난히 반짝이고 유난스러운 것들 이다.심지어 개중 자주 보던 것들도 딱지가 유난스러운 것들 위주로 짝지어져 상자에 담긴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적당한” 가격대의 알사스 화이트를 마시고 찾기 위해 다른 백화점 세 군데를 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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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어온 건 베르그하임의 마르셀 다이스(Marcel Deiss). 특색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테루아르를 중시 여겨 13종의 포도를 한 밭에서 재배하고, 이를 한꺼번에 수확해서 와인을 빚는다’고 한다. 이런 종류는 대개 압도하는 향에 비해 드라이한 편이라 매운맛 위주의 동양 음식, 커리 등등에 어울린다. 혹시 몰라서 홈페이지를 찾아 물어보니 금방 답이 오기를, 염두에 둔 커리, 스튜 등등과 잘 어울린다고. 그래서 새우와 돼지 안심의 그린 커리와 함께 먹었다. 커리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살 수 있는 페이스트 형태의 태국제-로 기억-인데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원재료 목록에 그야말로 깔끔한 매운맛을 지녔다. 농담이 아니라 신선함을 적당히 보정한다면 요즘 여러 곳에서 먹고 똑같다고 느낀 태국 음식점의 커리맛보다 기본 표정 자체가 낫다. 돼지 안심과 새우는 둘 다 과조리하기가 쉬운 재료인데, 다음의 요령을 따르면 된다. 먼저 돼지 안심은 냉동실에 30분 정도 얼려 겉을 살짝 굳힌 다음, 결 반대 방향으로 45도 각도를 넣어 비스듬하게 썰어(빨간 어묵 소시지 전 부칠때 써는 식) 기름을 두른 팬에 겉을 살짝 지진 다음 꺼내 두었다가 커리가 다 끓었을때 배어 나온 육즙과 통틀어 함께 넣고 살짝 더 끓인다. 새우는 그 상태에서 불에서 내리기 직전에 넣고 뚜껑을 덮어 약 5분 정도 두었다가 먹는다. ‘스모키’하게 구운 가지는 이런 종류의 음식에 향과 질감 모두 잘 어울리므로 ‘빡세게’ 구워 접시에 깔았다.

술은, 꿀과 흡사한 진한 금황색에 ‘달다’고 말할 수 있는 복잡적인 향을 지녔지만 드라이하고, 알싸한(spicy) 여운을 남긴다. 짬뽕, 김치와도 적당히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그 정도로 한 가지 맛, 특히 매운맛이 압도하는 음식과 와인의 궁합은 언제나 별로 내키지 않는다. 59,000원인지 63,000원인지 다소 헛갈린다. 약간 애매한 가격대.

 

2.  미네르부아와 코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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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안쪽에서 만족스러운 와인을 찾고 싶다면? 1순위는 코스트코, 2순위는 이마트다. 코스트코만 해도 화이트, 레드 통틀어 얼핏 헤아려 보아도 3만원 아래로만 열 다섯 종류는 되는 것 같으니 두루 마셔보고 이마트로 넘어가도 전혀 문제 없다. 현재도 2만원 중반-3만원 초반의 샤토네프 뒤 파프 두 종류가 있는데 그럭저럭 마실 수 있는 정도다.  하여간 이날 마신 레드 또한 그렇고 그런, 25,000원 대 제품. 드러내놓고 카리냥을 블렌딩했다는 건 마셔본 기억이 없어서 골랐다. 찾아보니 단위 면적 대비 수확량이 많아서 와인의 부피를 잡아주는 품종인데, 다만 주로 낮은 가격대에 많이 쓰는데 기계 수확은 불가능해서 점점 안 쓴다고. 미네르부아(Minervois)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의 AOC로 카리냥을 블렌딩하지만 비율은 40% 이하로 규정한다. 중간 이후로 뭉개지듯 스르륵 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짜임새를 원했다면 만족 못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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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곁들이는 철저한 재활용. 중동이나 서아시아의 미트볼-소시지인 코프타(Kofta)를 만들어 먹고 남은 게 있었다. 주로 양고기로 만든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양고기 사는 게 일이므로 생략하고 역시 남아있던 척(chuck) 자투리를 갈아 커민, 코리앤더 등 양념을 함께 버무렸다.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 8:2만 잘 지켜주면 어쨌든 먹을 수는 있다. 고수가 너무 빨리 시들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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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 먹겠다고 간만에 티라미수를 만들었으나, 두 병째에 취해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자느라 다음 날 먹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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