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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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물론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나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이제 여름이 가고 있구나, 곧 끝이 찾아오겠구나- 라고.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환상이다. 오랜만에 낮에 집을 나서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제 집에서는 선풍기조차 틀 필요가 없는 시간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지난 주에는 해가 진 다음 아니면 아예 한밤중에만 나다녔다. 햇살은 분명 가을에 가까워진 만큼 바랬지만 그렇다고 뜨겁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근 열흘 정도 쉬고 다시 20회의 PT를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운동을 한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했다시피 잠시 틈을 두는 동안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다. 물론, 불면이 원인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다소 불가항력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늦게 자거나 못 잔다고 잠이 올때 많이 자야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요 며칠 그렇게 보냈다.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을때, 절대 게으름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몸과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오늘을 기점으로, 지난 몇 주 동안 마음 불편했던 일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영어를 빌자면 ‘fair share’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좌절을 겪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차츰 그런 상황에 둔감해지는 건, 좌절할 일이 적어지기보다 그 패턴이며 원인이 거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큰 그림 돌아가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 일들은 분명히 있다. 세기는 달라도 고통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런 해프닝을 말미에 겪었던 여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남은 여름의 끝자락 사이에 그보다 더한 일이 없을 거라는 전제 아래. 좌절은 언제나 친구처럼 저기, 단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매일 밖을 나갈때마다 숨은 듯 버젓이 나를 기다리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이제 그가 내 친구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아직 그럴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여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적어도 그때까지만이라도. ‘fair share’는 ‘had enough’를 행간에 숨기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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