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선생 독자 행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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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했다. 뭐라고 써야 하나. 그러다가 작년 말, 내 책 내놓고 ‘아아 많이 응모해야 되는데’라는 심정으로 매일 들여다보던 내 책 독자 행사의 신청 페이지를 생각했다. 모두 오면 당연히 좋지만 ‘이런 사람들은 꼭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신청의 변이 종종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며 몇 줄 썼다. ‘제가 선생의 20년 독잔데 이번에 행사를 하신다고 하여…’

사실 20년이라는 세월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공교롭게도 내가 스물에서 마흔이 된 세월이기 때문에 그저 나에게 내적으로 의미가 조금 더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해 20년은 모두에게 그저 20년일 뿐인데 내 맥락이 그렇기 때문에 저렇다는 이야기. 어쨌든 돌아보면 신기한 20년이기는 했다. 내 삶은 됐고, 선생의 독자로서 그렇다. 어찌하여 나도 글을 써서 밥을 벌어 먹겠노라고 발버둥치는 인간이 되었지만, 그런 가운데 선생의 글을 즐겨 읽으면서 단 한 번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은 한 번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생산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둘 수 있기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든 읽는 것을 통해 질시하기 시작하면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을 것이며, 그럼 전혀 자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그건 나에게 죽음이나 다름 없다.

책 이야기를 잠깐 할까. 이번에 나온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오매불망 기다리는 소설-장편은 아니지만(계간 문학동네 올 여름호에 ‘피에로들의 밤’이라는 장편을 연재하신다고. 행사에서 이야기 듣고 냉큼 사서 보았다) 즐겁게 읽었는데, 그건 팬심을 빼놓더라도 책이 개인적인 차원의 장소혼(genius loci)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10년 전의 마지막 장편이었던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가 그 시점까지의 작가로서 삶을 정리하는 작품이었다면, ‘현대문학’에 연재했다는 이 에세이는 인간으로서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작품인 것.

그런 책을 위한 행사는 훌륭했다. 문답식으로 진행하는 형식은 물론 그 짜임새도 좋았다. 독자행사라는 것의 핵심이 결국 ‘공감의 시간’이라면 훌륭하게 일궈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오죽하면 난 원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형식의 행사를 좋아하지만, 다음 책의 행사는 저런 식으로 그냥 차분하게 앉아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를 모실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없다.

행사가 끝나고 사인을 받았다. 왼쪽 책꽂이 맨 윗단의 선생 전용 칸에서 고민하다가 ‘은어낚시통신(초판은 아니다)’,’장미창(이것은 초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눈의 여행자’ 세 권을 들고 갔다. 가지고 있는 책 전부를 들고 갈까 고민도 했었지만 나 혼자 사인받는 자리도 아닌데 모두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금방 접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의 복도를 쭉 따라 걸어 지하철역까지 가면서, 잠깐 지난 20년을 돌아보았다. 스쳐간 사람들의 생각이 끝에서 ‘왜 아직도 선생만은 책 또는 작가의 형태로 흘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가’라는 물음이 남았다. 정확하게 스스로에게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까지 흘러온 삶에서, 게다가 생산자로까지 살아가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심 없이 품을 수 있는 글을 써주는 사람이 하나 있는 건 참으로 다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버석버석한 삶에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4 Comments

  • Lori says:

    저는 ‘어머니의 수저’ 한 권만 읽어 봤는데, 위에 언급하신 책들도 읽어 보고 싶네요. 무엇보다, 사인 받을 책 고르실 때 얼마나 설레었을지 상상이 되면서 잠시나마 저도 설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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