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먹은 콩국수와 똥기저귀 및 기타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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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점심에 먹은 콩국수. 7,000원.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깔끔하게는 만든다. 선릉역 뒷쪽의 골목에서 갑님과 먹을 곳을 찾다가 깔끔해보여 내가 들어가자고 그랬다. 메뉴는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계절한정일 확률이 높은 이 콩국수. 하지만 이걸 정말 끼니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가격이 올라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것이다. 1,000원 올리고 삶은 계란을 두 개 얹어주면 되려나? 이제 문제는 단가 뿐만 아니라 설정(format/configuration)이다. 갑님이 드신 칼국수에도 동물성 단백질의 흔적은 전혀 없었고, 옆에 흑미밥 1/3 공기를 내줬다.

1. 지난 주엔 마감 때문에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이짓을 10년째 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 정도 공백기를 가졌다가 다시 돌아오면 막막하다. 사실 그래서 부러 잡담을 주절주절 쓴다. 이것마저도 부드럽게 쓰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1-1. 다시 번역을 마무리하러 책상 앞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평화롭고 편하다. 이제서야 끝이 보인다.

2. 알 수 없는 충동으로 16강부터 월드컵 경기를 거의 다 보았다. 그런데 왜 내가 보는 경기는 족족 점수가 나지 않는가. 와인 마시다가 쓰러져 자느라 못 본 일요일 새벽의 3,4위 결정전에서도 무려 세 골이나 나왔다더라. 그러나 결승전은 1-0으로 끝나고.

2-1. 아르헨티나 준우승 기념(애도?;;)으로 다음 주에는 말벡 등등을 마셔볼까 생각이 들었다. 레드는 그렇고 화이트는 토론테스가 좋은데 눈에 잘 뜨이지는 않는다.

3. 지난 번 롯데 백화점 와인 매장에 대한 글을 쓰고 주말에 동네 이마트를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같은 와인이라면 롯데 쪽이 가격을 좀 높이 매긴다는 느낌이다. 중가(50,000원?) 정도의 와인을 찾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이마트나 홈플러스의 냉장고에 모셔놓은 것들을 일단 섭렵해보는 건 어떨까. 무엇보다 양쪽 물어보지 않는 한 내버려 둔다.

4. 주말엔 정말 여느때보다 많은 트윗이 사람을 웃겨주었다. 식탁에 올려 놓고 간 똥기저귀 얘기부터 해보자. 100%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우리가 먹은 음식에는 가뜩이나 노동력의 비율이 적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 아닌가? 그런 현실에 왜 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가. 내 자식이 싼 똥오줌이라면 내가 처리하는 게 맞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왜 자식을 낳는가. 생각해보라. 인구가 노령화되고 출산을 거부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나라에 보탬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식을 낳지는 않는다. 그건 개인의 번식 욕구 실현이 자연스럽게(또는 그렇지 않게;;;)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보탬이 되는 경우다. 말하자면 인과관계를 뒤집어 착각한 다음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니 다른 사회성원 너희들도 나에게 이만큼의 배려를 해 달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설사 배려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식탁 위에 아무 생각 없이 올려 놓고 간 똥기저귀 치우는 것까지 아우르지는 않는다. 배려라는 말을 남용하지 말자.

4-1. 그리고 대체 그런 사안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는 인간들이 왜 세월호 등등 온갖 사회 사안에 대해 의협심을 분출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가. 그것도 인과관계가 잘못됐다. 대의명분은 개인의 허물을 가릴 수 없고 가려서도 안된다.

4-2. 대의명분 얘기가 나오니까 남의 글 짜깁기 해서 방송 원고 만들어놓고 항의하니 ‘좋은 일 하는데 왜 화를 내느냐’고 말하던 PD가 생각난다. 그것도 외주제작사라고. 공영방송도 엉터리인 현실에서 거기에 만드는 다큐멘터리 납품하는 외주 제작사 PD가 왜 대의명분까지 들먹이는 건지 난 이해를 못한다.

5. 내 타임라인엔 적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가자지구 희생자, 특히 어린이의 사진을 돌리는 인간들이 있는 모양이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이라서’라고 말하는 인간들에겐 두 가지로 반론한다. 첫 번째, 그렇게 시각적 상상력이 빈곤한가. 성인이라면 주변인의 죽음 한 번 겪어 보지 않은 경우 드물고, 굳이 비극적인 이미지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내재화된 죽음의 상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대체 뭘 또 더해야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두 번째, 미안하지만 트위터에서 리트윗따위 하는 건 사실 품도 무엇도 전혀 들지 않는 생색내기일 뿐이다. 그렇게도 희생에 마음이 아프고, 그걸 꼭 알려야 되겠다면 어떻게든 가서 직접 겪든 사진을 찍든 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가져와서 호소하라.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당신의 의협심과 그것의 소극적인 분출은 그 의협심의 대상인 변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생색내지 말자.

2 Comments

  • 아무래도 16강부터는 지면 떨어지니….
    수비를 먼저 하는 지지않는 경기가 많다보니….
    독일 vs 브라질을 보셨으면 덜 억울하셨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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