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과 기적의 남발

2014-06-26_004015

회사를 다니던 어느날, 사내 전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삼십 년 가까이 ‘리셉셔니스트’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다른 주의 호수가 주택으로 떠난 할머니의 사위가 말기 암이라며 기적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내용. 나는 궁금했다. 과연 우리가, 그저 이 미천한 하나의 생명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기적같은 걸 정말 바라도 되는 걸까. 내가, 내 주변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이후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월드컵 16강의 기적’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 어차피 경쟁하러 나간 것이니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세월호 참사를 놓고 사람들은 기적이라는 카드를 한 번 썼다. 이건 뭐 참사 났다고 ‘지금 이 마당에 공연을 해야 하는가’라는 논리로 월드컵을 즐겨서는 안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굳이 기적까지, 그것도 현실적으로 16강 진출이 불가능한 여건에서 들먹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적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규칙 위반일 수 있는데 그걸 구태여 이 맥락에 또 들먹여야 속이 시원할까. 기적이라는 말에 내적인 우선순위가 존재해서 생사가 달린 그 기적은 엄중한 기적이고  16강 진출이 달린 이 기적은 이 기적은 가벼운 기적인가. 그래서 그 카드 한 번 썼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한 번 더 써도 괜찮은 것인가. 정말 그 기적이 일어나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사는 게 달라지나. 만약 세월호 참사에서 진짜로 기적이 일어났다면(너무나도 슬프게도 그럴 가능성은 없었지만) 정말로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게 아니잖는가. 생각이 정말 너무 심하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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